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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콜롬비아 막달레나 강에서의 크리스마스

alyosa 2010. 1. 28. 12:20

[부산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2010 1 28일자 원본]

 

(* 신문 편집판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고향에서' 라는 제목으로, 마치 그의 고향 마을에 다녀온 듯 문장을 잘라서 편집해 놓았는데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고향 마을은 아라까따까 (Aracataca) 로 과말과 마찬가지로 막달레나 주의 막달레나 강 마을이긴 하지만 아무튼 아라카타카가 그의 고향이므로 혹시 신문 읽으신 분은 착오 없으시기를... 여기는 과말이라고 그의 고향 '일대', 막달레나 주의 한 마을 이야기임)

 

콜롬비아 막달레나강에서의 크리스마스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고향 일대에서 바라본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휴머니즘

장혜영

 

  

라틴아메리카 모든 이들이 고향 앞으로향하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나는 대학동창의 주선으로 콜롬비아 막달레나 주의 과말 (Guamal) 일대를 다녀왔다. 막달레나 주는 콜롬비아에서도 비교적 변방에 속하지만 그 이름만은 널리 알려져 있는 게 세계적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바로 이 지역 출신으로 이 주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막달레나강을 배경으로 여러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던 그는 미술용어에서 비롯된 마술적 사실주의작가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등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그의 이야기 세계가 마술적이라고 본 평단에서 그의 복고적인 서술 양식을 포함해 마술적-사실주의소설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그의 소설 속 막달레나강에 간다는 호기심을 안고 멕시코서 콜롬비아까지의 비행과 다시 9시간의 버스여행을 감수한 채 목적지인 과말에 도착했을 때부터 무언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을 한다.

 

먼저 대중교통이 없어졌다. 주변 지역에서 택시를 대절해 과말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들어온 이상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물론 인터넷도 굿바이였다. PC 방이 하나 있긴 했지만 무선 인터넷이 너무 자주 끊겨 이메일 하나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거기다 길 표지판도 없고 포장도로도 없다. 흙이 풀풀 날리는 길에 보이는 것이라곤 동서남북 똑같이 소들이 풀을 뜯는 초원뿐이다. 이 지역의 사제로 수십여 마을의 성소를 관할하러 온종일 차를 몰고 다니는 대학동창에게 무얼 보고 길을 찾아가느냐 물으니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냥 감으로 다닌다고 하다가 정 헷갈릴 땐 하늘의 별자리로 방향을 찾는다며 농을 던진다.

 

그러다 배를 타고 막달레나강 지류의 섬에 도착했을 땐 이제 전기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원시적으로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이 첫 영성체 날이라 아이들은 하얀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있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을지언정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섬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 주변 강엔 먼지 티끌, 종이 한 장 떠다니지 않았다. 그 청정의 강물에서 잡아 올린 생선은 한국의 부산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깔끔한 맛이 있었다.

 

사람들의 의식 또한 달랐다. 여기 사람들은 시계도 잘 차지 않고 시간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시 몇분에 만나자가 아니라 그냥 아침에 만나자라고 말한다. 시간이나 연도 같은 숫자 자체를 잘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마녀와 유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녀와 유령이 출몰하는 곳이 있다는데 일부는 진짜 그것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21세기에 무슨 마녀 타령인가 싶지만 거기는 밤이 되면 별빛 밖에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라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마녀는 나타나지 않을지언정 야생동물이 덮쳐올 가능성은 충분할 터. 마녀든 야생동물이든 아무튼 위험하니 밤에 거기 지나다니지 말라는 의미다. 거기다 다이어트가 생활화된 한국서 온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음식을 내놓는다. 한 접시를 다 먹으면 또 한 접시를 내 놓고 한 잔의 주스를 비우고 나면 또 한잔 넘치도록 부어준다.

 

잘 사는 집에 가면 거절할 수도 있고 거절해도 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8 남매가 기본인 이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을 내 놓는 것인데 그것을 억지로 다 먹어 치우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그 소중한 것을 애써 내놓는 성의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당연히 이런 곳에서는 범죄가 있을 수가 없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지내고 한 사람이 한 얘기가 모두에게 퍼진다.

 

그렇게 꿈처럼 막달레나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떠나올 때 드는 생각, 과연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의 내용이 마술이고 상상이었을까? 이 막달레나에서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는 그에게 유령과 대화를 하고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은 현실처럼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을까? 이 잊을 수 없는 문화체험 속에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작가의 작품은 결국 그의 경험을 반영한다는 것, 그런 바탕 없는 상상의 세계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세상이 많다는 것, 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알기 위해선 넓은 가슴으로 그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