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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키라의 영화 <산다는 것> 과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

alyosa 2010. 5. 18. 13:03

 [국제 신문 인문학 칼럼 5 13일자 원본] (신문 지면 편집판과는 제목과 문장이 약간 다름)

 

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최후가 주는 교훈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절일수록 희망의 파랑새는 우리 가까이에 있어

장혜영

                          

요즘 세상을 보면 시절이 하 수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비보가 전해올뿐더러 여기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아이티와 칠레의 강진으로 인한 참사에다 얼마 전엔 멕시코 북부 태평양쪽 반도인 바하칼리포니아에도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났었다. 그 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TV로 축구를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걸려오는 한국의 지인들의 걱정스런 전화에 내가 오히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실은 멕시코시티 자체가 지진지대인데다 나 역시 몇 년 전 리히터 6.3 도의 지진으로 한밤중에 괴기영화를 보다 그 영화보다 더 괴기스럽게 집이 기우뚱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 참에 1985년의 멕시코시티 대지진을 겪은 친구들한테 지진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무조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야 될는지 한번 물어보았다. 그러니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거리라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바닥에 엎드리거나 그나마 보호가 될 수 있는 단단한 가구 아래에 들어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85년 지진 때 9층 건물에 있었는데 겁에 질려 급하게 뛰어나간 한 여성은 비상 계단에서 건물 창 밖으로 튕겨나가 심각한 골절을 입었고 건물 안에 있었던 자기는 멀쩡했다고 한다.  결국엔 침착하게 최대한 보호가 될 곳에 몸을 숨기고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얘긴데 정말 지구가 노하기라도 한 것 일까.

 

사실 이런 천재지변의 경우는 불안에 떨어봤자 도움도 안된다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좀 있었는데 이 경우야 어디 피할 수가 있나 나갈 수가 있나,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라 그냥 그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고 좋은 데 여행도 많이 다녔으니 아쉬울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다며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나이와 체력 핑계를 대며 매우 게으르게 살았더니 이제 그런 상황에 막다르면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아 이대로 죽긴 아쉽다며 마구 발버둥 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 

 

죽음에 대처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의 영화 <산다는 것 (1952)> 이다. 평생 서류에 결제 도장만 찍고 민원을 청하러 오는 주민들에게도 내 담당이 아닙니다, 다른 부서로 가세요소리만 했던 한 공무원이 불치병 선고를 받게 되자 무의미하게 지낸 삶이 후회돼 방황하던 차, 이제 남은 시간 만이라도 다르게 살아야 그나마 후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관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고, 그야말로 이미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더 무서울 것이 없었기에 관료주의에 물든 상사와 동료들을 설득해 가난한 지역의 식수 오염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조금 덜 후회되는 마음으로, 동네 사람들의 진심 어린 눈물을 뒤로한 채 눈을 감는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경우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1886-1944)의 실제 삶이다. 역사학계의 학풍을 뒤집었다는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그는 유태계였기에 2차 대전 직전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피난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아빠, 역사란 도대체 뭘 위한 거예요?” 라는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의 유작 <역사를 위한 변명 혹은 역사가의 임무>를 쓰던 중 미완성 상태에서 펜을 놓고 나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단체에 합류하게 된다. 57살의 적지 않은 나이였던 그는 결국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총살당하는데 두려움에 떠는 어린 소년 레지스탕스를 위로하며 의연히 죽음을 맞았다 한다.

 

그가 굳이 이러한 길을 갔던 것은 어차피 유대인으로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현실 속에서 불확실한 삶에 연연하기 보다는 역사가의 펜은 진실을 말해야 하고 역사가의 임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던 그의 마지막 원고 속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 후회 없는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였을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감히 블로크 같은 위인의 삶을 그대로 따를 수야 있겠냐 만은 결국엔 시설이 수상하든 살기가 힘들든 세상이 잔인하게 돌아가든 그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 외엔 답이 없다는 게 아닐까. 시대가 어려울수록 오히려 희망을 찾는 것은 쉬울 수도 있는 법, 이 수상한 시절에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다음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을지 그 길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