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신문 2010년 6월 24일자 인문학 칼럼]
인간 ‘마라도나’에 관한 단상들
축구에 대한 열정, 문화적 동질성 부여… 라틴아메리카를 '큰 조국'으로 묶어
장혜영
지난주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콜롬비아의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다가 내 생각이 나서 메일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남아메리카 사람 입장에서는 같은 대륙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야 당연한데 친구가 한국인이라서 그냥 양 팀을 다 응원하면서 경기를 시청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시아 대륙의 사람이라고 해도 같은 아시안으로서의 동질적 감정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과는 달리,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큰 조국’ 으로서의 라틴아메리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묶어주는 문화적 동질성 중 한 가지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요, 그 상징 중 하나는 바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현 감독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1960년생) 이다.
브라질의 펠레와 더불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격수로 불리는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탈리아 나폴리 프로팀에 스카우트 된 뒤 거기서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고 동시에 약물 중독을 이겨내기 위한 긴 세월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힌 것은 쿠바 정부였다. 전 라틴아메리카의 국기(國技)와도 같은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마라도나를 위해 최상의 치료 환경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나선 것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쿠바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일종의 홍보책이 아니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실제로 쿠바의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그의 재활을 도왔다. 그래서인지 마라도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쿠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곤 한다.
2004년에는 쿠바를 떠나 잠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의학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비관적인 의료 소견들이 나왔다. 그 순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단결했다. 전 국민이 촛불을 켜고 마라도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평소 마라도나를 고깝게 보거나 비판했던 사람들마저 그 순간 만큼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회복을 빌었다.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많은 이들의 그 간절한 염원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기적적으로 눈을 떴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후 콜롬비아 의료진의 도움으로 위 우회술 수술을 받아 50kg 정도를 감량한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라이브 TV쇼를 진행했다. 노래와 춤 등 숨은 재주들을 선보이며 인기를 끈 이 프로그램에서 마라도나는 자신의 과거 실수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를 도와준 사람들과 라틴아메리카의 존경받는 인사들을 초대해 진지하게 그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 방송은 전 라틴아메리카에 방영되었고 멕시코에 있던 나 역시 즐겨 보았다. 프로그램의 테마송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멕시코에서도 히트를 쳤다.
이후로는 지도자로 변신해 단기간 만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꿈의 팀’인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수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마라도나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또 다른 성공 신화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라도나는 근래에 들어 그의 인생 중 가장 많은 비난을 들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자 그렇게 사랑받아온 그 또한 성적 부진에 따른 여론의 거센 비난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아직도 마라도나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이나 위대한 정치가 보다는 이 불완전한 축구 천재의 삶을 지켜보면서 더 많은 인생의 교훈을 찾는 듯하다.
하기야 마라도나가 과거에 실수가 많았을지언정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세상의 모든 장벽을 다 깨부수고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임엔 틀림없지 않은가. 그렇게 땀 흘린 노력과 정직한 실력이 아직까지 통하는 세계가 축구와 스포츠의 세계고, 그래서 이 세상도 그렇게 노력한 만큼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사회 맨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정상에 이르기까지 굴곡과 파란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산 마라도나의 드라마틱한 인생 유전은 영원한 관심거리로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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