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2009년 10월 22일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 /장혜영
지식인의 사회의무 낡은 것으로 인식…세상이 바뀌어도 변치않는 가치 있어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을 아십니까? 남아메리카 대륙 북쪽에 위치해 우리와 별 관계가 없는 나라임에도 '작은 베네치아' 를 뜻하는 이 나라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 세계 미인대회를 휩쓸어온 팔등신의 '미스 베네수엘라'들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신문의 정치·국제면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라면 21세기의 돈키호테로 불리고 있는 우고 차베스 현 대통령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가장 유명세를 떨친 이는 올해 LA 필하모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이달 초에 갓 데뷔 연주를 마친 28세의 청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아닐까.
1981년생으로 음악의 도시 바르키시메토에서 태어난 구스타보 두다멜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였다. 베네수엘라의 모차르트라 부를 만하지만, 모차르트와는 달리 클럽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는 아버지 밑에서 빠듯하게 자란 그가 재빨리 재능을 발견해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베네수엘라에서는 1975년부터 무상 음악 교육 시스템이 생겼고 그 시스템을 창안한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두다멜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음악 교육에 관한 남다른 신념으로 정부에 수십 번을 건의한 끝에 가장 열악한 환경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상 음악 교육을 실시해 신분 상승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창시한 아브레우 박사는 두다멜이 이 엘 시스테마를 이끌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가 14세가 되던 해부터 본격적인 지휘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그가 채 스무 살을 채우기도 전 엘 시스테마 학생들로 이루어진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일임해 어렵게 초청받은 유럽의 페스티벌에 내보냈다.
남아메리카에서 날아온 21세기의 모차르트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하는 청소년들의 연주는 유럽을 단번에 감동시켰고 두다멜은 이후 승승장구해 라 스칼라, 베를린 필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결국 LA 필의 역대 최연소 음악감독으로 계약하는 데 성공한다. 명문 음악학교 출신들이나 오를 수 있었던 자리에 백프로 베네수엘라산 시골뜨기가 입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가 된 그는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한 아브레우 박사와 엘 시스테마를 적극 홍보하고 후배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바쁜 스케줄에도 베네수엘라로 돌아가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두다멜의 존재 자체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조국의 음악학도들은 이후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에 스카우트되기도 하고, 제2의 두다멜을 꿈꾸는 어린 지휘자들은 외국에서 객원 지휘를 할 기회를 잡기도 한다. 그중 한 명인 디에고 마테우스는 얼마 전 한국 서울시향의 객원 지휘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성공한 이들은 두다멜이 그랬듯이 조국의 후배들을 이끌고 지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먼 벽지의 시골 마을까지 찾아가 무상으로 레슨을 해주는 게 당연한 도리였다. 결국 천재를 알아보고 굳은 믿음과 함께 지원을 해준 아브레우 박사와 그 믿음에 그대로 보답한 두다멜은 베네수엘라 사회의 본보기가 되어 더 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이 있도록 해준 사람들의 은혜를 되갚기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사회 환원의 고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생이 되면 야학의 교사로 일하는 게 당연한 도리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어렵던 시절 거금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간다는 것은 특권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대학에 간 지식인의 당연한 사회적 의무로서 자원봉사를 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나 사회 환원 같은 것들은 빛바랜 과거의 낡은 가치들로 버려지고, 지식은 돈을 벌기 위한 한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개구리가 되기 전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고 자신이 쌓은 지식을 남들에게 돌려줄 줄 아는 베네수엘라 젊은 음악인들의 사연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감동을 받은 것을 보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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