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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결산 평- 20년 만에 한국에서 본 월드컵

alyosa 2022. 12. 19. 00:55

월드컵은 보통 여름에 진행되기 때문에 나는 2002년 우리나라 월드컵 다음부터는 전부 멕시코에서 월드컵을 봤다. 2006, 2010년은 거기 살고 있었고, 이후로는 방학 때마다 넘어가다 보니 조별 예선 초반은 한국에서 볼 수 있지만 중간에 멕시코에 넘어가서 나머지를 보곤 했는데 멕시코는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지만 월드컵 경기는 공중파에서 거의 중계하지 않는다. 자국 경기만 공중파에서 하고 나머지 팀 경기는 보통 유료 스포츠 채널에서 한다.

 

대신 축구 열기는 높아서 대학교 식당에도 축구공이나 선수들 사진을 장식하고 조별 일정을 붙여 놓기도 하고 대형 마트에서도 월드컵 주제곡을 계속 틀어주고 월드컵 마케팅도 하는 등 월드컵 분위기는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카타르 월드컵은 겨울에 열리는 바람에 드디어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됐는데 우리나라는 공중파에서 중계권을 따 전 경기를 다해 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다만 해설 소리를 제거하고 현장음만 듣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원래 브라질 팬인데, 사실 브라질은 2002년 우승 이후 실력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과 할 때 보니 공수가 탄탄해 보여서 20년만에 기회가 온 것인가 싶었는데 크로아티아에게 일격을 당해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떨어졌다. 브라질은 승부차기에 강한 팀인데 어찌된 셈인지 1번 키커를 어린 선수로 내세우는 결정적인 실수 끝에 져서 아르헨티나VS브라질의 꿈의 4강 대결을 무산시켰다.

 

브라질 하면 코파카바나의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풋살이 아닌 축구장 규격으로 경기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던 선수들이 생각나는데 거기다 평소 발목을 리드미컬하게 꺾는 삼바춤을 자주 추다 보니 이래저래 발재간이나 공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 거기다 축구에 대한 국가적 열정까지 더해지니 영원한 우승후보이자 유일한 5회 우승팀이 되었는데 그동안 계속 지지부진하다 이번 찬스까지 날려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리우 사진은 어디 보관했는지 안 찾아지고,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북동부 도시 사우바도르 Salvador 다 바이아의 바닷가 )

 

그런데 또 내가 꾸준히 좋아했던 팀이 모로코였다. 하지, 루마니아의 게오르규 하지 말고 모로코의 무스타파 하지가 뛰던 때부터 좋아했는데 공수 균형이 좋아 수비가 탄탄하면서도 공격력도 있는 팀이었다. 그동안 8강은 한번 간 걸로 생각했는데 8강이 아니라 16강이었다 한다. 지브롤터 해협 넘어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을 이기고 피레네 산맥 넘어 프랑스, 식민 지배자였던 프랑스를 만나 아깝게 졌다. 0-2 패였지만 심판이 모로코의 PK를 불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좀 찜찜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로코나 모로코 선수들은 거기에 굉장히 앙금이 남았다 한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라지만 이슬람 권이라서 개최국 카타르와 같은 문화권이라 3-4위전에서 이기고 카타르+모로코 관중들과 함께 대미를 장식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문제는 상대인 크로아티아가 준결승 경기를 하루 일찍 치렀다는 점이었다. 거기 비해 모로코는 사흘도 채 못 쉬고 3-4위전을 하니 처음부터 좀 어리버리 하다 싶더니 아깝게 1 2 로 패했다.

 

이 경기 주심은 카타르인이었는데 왜 같은 아랍권 국가 심판이 주심을 하느냐는 크로아티아의 항의를 의식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성향이 원래 그래서 그런지 모로코의 pk 찬스에서 휘슬을 불어주지 않아 프랑스와의 준결승 때부터 피해의식이 쌓인 모로코 선수들이 격렬하게 항의를 하며 경기가 끝났다. 이기든 지든 후회없이 공평하게 싸우고 끝이 나야 심적으로도 후련할 텐데, 그냥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모로코 골키퍼이자 세비야 팀의 골키퍼 야신 보노 (부누), “야신이름이 불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래는데 태어날 때부터 골키퍼가 될 운명이었던 건지, 왜 이름을 야신으로 지었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어차피 스펠링은 다르긴한데. U2 의 보노 떠오르게 하는 성(?)도 마음에 드는데 실은 본명의 성은 부누 Bounou 라는데 유니폼에도 별명 혹은 애칭이라는 Bono 를 새겨 나온다. 별명이야 이젠 그냥 "야신" 이라 하면 될 듯.   

 

모로코 하면 스페인에서 모로코 탕헤르로 넘어갈 때 지브롤터 해협의 바다를 보겠다고 비를 맞으며 갑판에 나와 있었던 기억이 난다. 히잡을 쓴 여인들과, 탕헤르에서 마셨던 맛이 독특했던 커피, 그리고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며 관광 안내를 해주겠다던 어설픈 영어의 아저씨. 나중엔 커피 마시는 나 앞에서 자기 가족 얘기만 실컷 했었다.

 

그리고 모로코 선수들이 경기 끝나고 나면 관중석 앞으로 가 큰 절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우리처럼 관중에게 감사의 의미로 절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관중석 쪽으로 가서 신께 감사하는 절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 모로코 탕헤르 (탠지어, Tanger ) 에서 사온 엽서. 나는 계속 '탕헤르'라고 부르고 있는데, 모로코 공식 발음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 엽서는 프랑스어로 표기되어 있다. )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나로서는 과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4강에서 만났더라면, 아르헨티나가 과연 결승에 올 수 있었을까를 계속 떠올리게 했던 결승전 대진 아르헨티나 대 프랑스. 멕시코 대통령 AMLO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체 게바라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메시를 응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디오를 찍어 응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나는 한편으로 아르헨티나 생각이 새록새록 나고 있다. 특히 그때 로사리오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에 일주일 정도 묵으면서 근처의 소도시 베나도 투에르토에 크리스마스 이브날 갔다왔었는데 베나도 투에르토는 옛 테니스 스타 기예르모 코리아 때문에 알게 된 자그만 마을이었다. 거기 아디다스 상점에 코리아의 사진이 붙어있던 것도 기억나고, 오고 가던 길에 끝없이 보이던 평원, , 평원에 가끔씩 보이던 집들의 불빛을 들여다 보던 것들 등 모두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었다.

 

그리고 로사리오 하면 그곳은 가수 피토 파에스, 그리고 체 게바라의 고향,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고향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요즘 하도 메시, 메시 하는 소릴 듣다 보니 아 참, 메시가 로사리오 출신이지 하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로 4시간쯤 되는 로사리오에 하필 가 있었는지 그 이유가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메시 고향 이라는 생각도 떠올리서 갔던 거 같긴 하다. 코리아가 같은 로사리오 쪽 출신이라고 메시를 좋아했던가 뭔가 그쪽에서 라인이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처음 아르헨티나 갔었을 때는 지금만큼 메시가 인기 있지 않았고, NBA 농구 스타인 히노빌리(지노빌리) 가 더 국민적인 대표 스타였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하면 특유의 손 동작 하며 콩콩 뛰는 거, 그게 생활 문화인데 콘서트에 가도 앵콜 신청하며 그렇게 뛴다. 거기 끼여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같이 뛰게 된다.   

 

( 갑자기 아르헨티나 사진 찾으려니 잘 안찾아져서 올리는 우루과이 센테나리오 경기장. 첫번째 월드컵 경기가 치루어진 경기장인데, 지금 보기에도 시야가 괜찮았다. )

 

어쨌든 간만에 신경 써서 본 이번 월드컵에 대한 내 결론은, “역시 축구는 심판 놀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안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오랜 축구팬으로서 스스로 유감스러운 결론이긴 하다. 축구의 끊기지 않는 유려한 흐름, 그리고 드라마틱한 한 골의 의미 등은 역시 스포츠의 꽃이며 전 세계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나, VAR 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PK 판정의 세부 규정은 모호하기 짝이 없고 주심 맘에 달려 있으니 그거에 더 상처받고 싶지가 않다는 게 어느덧 나이 들어 삶에 지친 내 마음이다.

스포츠에 내가 그렇게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은 모순과 부조리가 많은 인생사와는 달리 스포츠에서만은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대결, 정당한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승리의 순간이 무엇보다도 짜릿한 것인데, 축구도 아직은 정치가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게 나를 슬프게 한다. 갑자기 세나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세나: F1의 신화의 대사들이 막 생각나는데 그래도, 4년 뒤엔 또 월드컵을 보면서 또 상처받겠지, 그런 정치실력으로 이겨내길 기대하면서, 또 실망하면서.      

 

 

p.s.1 >> 프랑스랑 아르헨티나가 결승전을 하니, 아르헨티나 출신인데 프랑스에 귀화했던 트레제게 생각이 났다. 이번 월드컵 때 관중석에 있는 거도 한번 잡혔는데 과연 어느 팀을 응원했을까? 예전에 리베르 플라테 (River plate) 축구팀의 작은 기념품을 샀는데, 7번 등번호 밑에 트레제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p.s.2 >> 이번 대회 일정이 빡빡해서, 경기 날짜에 의해 휴식 시간의 길고 짧음에 의해 결정적으로 결과가 갈린 면도 있는 것 같다. 예로 프랑스는 아르헨티나보다 하루 늦게 준결승을 치렀고, 그래서인지 결승전 초반에 움직임이 둔한 모습을 보였다. 그외엔 경기장도 아름답고, 로고도 마음에 들고, 나름 성공한 듯 보이는 카타르 월드컵이었다.

 

( 위의 사진 두장은 직접 촬영 )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도착해 환영 퍼레이드 행사를 하는 선수들. 양복 입으니 보기 좋다. (사진 출처: 하키미 선수 트위터. 그런데 그 전 출처가 있을 듯)

Felicidades Maghrib   

(사진 출처: [Juan Medina/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