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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쇼 사진 및 감상평] 현대 카드 슈퍼 매치-매달리스트 온 아이스2010

alyosa 2010. 6. 8. 21:35

이번 짧은 한국행에 운좋게 맞닥뜨린 아이스쇼 현대 카드 슈퍼 매치 - 메달리스트 온 아이스 2010 (6월 5-6일) 간단 감상평

 

 

 

잠실 실내 체육관에 만든 임시 빙판이 좀 작아 선수들이 스피드가 나지 않는 편이었다... 난 옛날엔 아이스쇼는 목동에서 주로 보았다... 그때야 볼쇼이 아이스쇼 이런 거 뿐이었고...

 


1. 아사다 마오 & 벤쿠버 남자 금메달리스트 


나는 유명한 선수들 이렇게 많이 불러놓고도 왜 자꾸 아사다 마오만 언론에다 외치는지 신기하더니만 가서 객석에 앉아 보니까 상당수 관중들이 피겨 선수라곤 김연아랑 아사다 마오밖에 모르더라고... 그런데 나는 여자 피겨 별로 안좋아하는데 보니 역시나 여자들 경기는 지루... 빙판을 지쳐 나가는 힘이 떨어지니 스케이팅의 맛이 안 느껴지던데 


하여튼 그중 아사다 마오, 몸선도 예쁘고 얼굴도 방긋방긋 예쁘긴 한데 솔직히 잘한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고, 실은 조금은 쇼킹했다... 왜냐면 트레이드마크인 악셀 점프를 뛴다고 뛰어오르는데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폴짝’ 뛰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셀은 힘과 스피드를 모아 단번에 튀어오르는 그 다이나믹함에 매력이 있는데 힘이 딸려서 그런지 스피드 다 죽인 뒤 거의 제자리에서 폴짝...

 

공중에서 회전이 빠른 편이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 힘없이 뛰어 올라서야 3 바퀴 반을 완전하게 채우기 힘들다, 2바퀴 반까지야 가능하지만... 그러니깐 좀 문제가 있다는 걸 이번에 생눈으로 보고 알 수 있었는데, 사실 아사다만 그런 건 아니고 남자 피겨계에도 거의 같은 스타일로 ‘포올~짝’ 악셀을 뛰는 선수가 있으니 이번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 아사다야 여자라 힘이 딸려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 선수가 악셀을 폴짝식으로 뛴다는 건 좀... 그래도 점프 점수 잘 받아 금메달까지 땄으니 채점제 스포츠에선 역시 나라 힘이 쎄고 봐야...

 

어쨌든 여자 랭킹 2-4 위 권인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조애니 로세트 하는 거 직접 보니 아직 김연아 하는 건 직접은 못봤지만 얘네들하곤 완전히 차원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케이팅 스피드에서부터 점프의 높이까지 모든 게...


2. 야구딘- 윈터


옛날에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70 mm 필름으로 극장에서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달까,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거 같았던 꿈이 이루어진 느낌... 야구딘의 윈터를 내 눈으로 보다니... 저 프로그램을 하던 2002년 그때로부터 7 년이 지났고 물론 이제 최고난도 점프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 하는 점프도 좋고 박력 있고 또 감동적이었다. 그냥 만감이 교차했는데 한편으로 이제 야구딘도 후배들에게 밀려 잊혀져간다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데 인상이 좀 차가운 느낌이랄까... 그래도 멋지고... 2부서 쇼맨십 부리는 것도 좋았고... 러시안 둘이서 분위기 다 잡아준 듯... 러시아 애들은 참 갈라를 잘한다... 남녀 페어 댄싱 가릴 것 없이 다들...


3. 스테판 랑비엘- 라 트라비아타 / 레이 찰스의 Let the good times roll


2부에 새로 만든 재즈 보컬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날씬한 무용수 체격에 멋지고 잘하고 최선을 다하고 좋았다. 그런데 역시 뭐랄까, 혼자서 쇼 메인을 할 파워는 모자란 느낌이 들고 그러니 유럽에서는 플루쉔코-랑비엘 둘이 투톱이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던데 나 언젠가는 동유럽 집시 풍의 kings on ice 쇼 보러 갈 테니 그때까지 망하지 말고 둘이서 유럽 아이스쇼 시장 잘 지키고 있기를... 정 안되면 스위스의 art on ice 가 있긴한데 스위스는 별로 안 가고 싶고... 페데러 보러가는 거면 모를까...  


 

4. 플루센코 - 나는 아파요 Je suis malade / 쿠르트 바일의 “맥 더 나이프의 발라드” Ballad of Mack The Knife (Kurt Weil) 의 로비 윌리암스 노래 버젼


프로그램 안내서에 1부에서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인 아랑훼즈 협주곡을 한다고 찍혀 있는데 들리는 말로는 팬들의 권유로 올림픽 갈라 프로그램 ‘나는 아파요’ 를 1 부로 옮겨올 생각이라나... 그런데 그 소리 듣고 우리 어머니 한마디 하시길, “선수들이 올 때 의상을 딱 맞춰서 가져 올 텐데 그렇게 프로그램을 바꾸면 옷은 어쩔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상한 검은 옷 맞춰 껴입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분위기 잡고 시작했는데,

 

올림픽 때 기립 박수를 받은 이 슬픈 갈라를 하는데 남자 선수들은 누가누군지 잘 모르는 관객들, 집중을 안하고 부시럭 부시럭 웅성웅성 분위기 다 깨고 있다. 그래도 연기 후 인형이랑 꽃 한 아름 받아 안고 들어간 플루셴코, 아이스쇼의 장인급 답게 재빠르게 분위기 파악하고는 다음 날엔 안무 바꿔서 중간중간 이상한 코믹 스텝들을 집어넣어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산만한 관중들을 집중시켜 가면서 퍼포먼스를 한다. 인형은 또 혼자 많이 받고...


그런데 2 부에는 새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감옥에 갇힌 죄수가 탈출해서 즐겁게 놀다가 다시 잡힌다는 내용. 이것도 첫날 둘째날 안무가 많이 바뀌었는데 지멋대로 즉홍연기를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좀 더 진화된 둘째날 연기가 참 좋았다. 브로드웨이 쑈의 라이자 미넬리처럼 애교떠는 안무도 멋졌고. 그런데 이 프로그램 음악이 브레히트-쿠르트 바일의 노래극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맥 더 나이프의 발라드'의 재즈 버젼이다.

 

어째 이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곡들만 쏙쏙 빼서 갈라에 쓰는지, 그럼 그 죄수가 무서운 살인마 칼잡이 맥(Mack The Knife) 이란 건가, 그래서 칼 가는 동작이 들어간 건지... 그냥 쇠줄을 끊어냈다는 의미인지... 아무튼 덕분에 한국의 쿠르트 바일을 꿈꾸며 독일 노래극에 빠져들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주 즐겁게,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보았다. 

 

연기적으로는 팔이 잡아 당겨 늘인 것처럼 (가제트 형사?) 엄청 길고 손도 커 손동작이 시선을 확 끌고, 뒷걸음질쳐 나가는 스케이팅도, 탭댄스 스텝도 자유자재... 천연덕스러움을 넘어서 뻔뻔함까지 느껴지는 표정 연기까지 뭐 '쇼'에 관한한 따를 자 없는 제 1의 '꾼' 인 건 확실한 듯... 

 

( * 6월6 일 맥 더 나이프의 발라드 공연 동영상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6-7c-9GqE3Q )
 

5. 쉔 슈에 & 자오 홍보 페어: 모리화-공주는 잠 못 이루고 (투란도트)


그런데 이 조도 야구딘 못지않은 감동이었다. 올림픽 동-동-금메달 아니었나? 하여튼 페어에 한참 빠졌던 시절 내가 좋아하던 타마라 모스크비나의 제자들에 밀려 동을 주로 땄는데 어쨌든 투란도트는 그때부터 감동.... 그런데 이번에 모리화-투란도트를 편집한 예전부터 쓰던 갈라를 했는데 정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연을 했는데 아무 선물도 하나 날아오지 않아 쉔 슈에가 연기에 썼던 붉은 천만 주워들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나는 2, 3층에서 봐서 뭘 던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또 주최측에서 경기 진행 빨리 하려고 던지지 말라고도 하던데 아름다운 연기를 펼친 프리마 돈나한테 꽃 한송이 없다니 지금 경기 빨리 진행하는 게 문젠가. 주최측에서라도 꽃다발을 준비해 적어도 여자선수한텐 꽃을 줘야지, 보기에 너무 민망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셴 슈에 단아하게 곱고 예쁘더라고.


6. 엔딩 노바디 + 2PM 춤?


솔직히 아이스쇼라고 부르기에 구성이 거의 하나도 없고 음향도 엉망이고 또 사실은 쇼가 아닌 메달리스트 줄서기 공연 셈이라 그래서 처음엔 주최측 욕도 많이 했는데, 근데 사실 보니까 어차피 쇼 라는 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건데 주변을 둘러보니 피겨의 전설급 선수도 모르는 관객들이 상당수였으니 그 관객들 앞에서 심오한 클래식 라이브 쇼를 구성할 수도 없고, 아무 구성이 없는 거나 막판에 한국 아이돌 그룹들 춤을 넣은 거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 같다.

 

나는 여자 선수들이 추던 노바디까지는 알겠는데 남자 선수들이 하던 건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남자 아이돌 가수들 춤이었는데 관중들의 호응은 좋았으니 괜찮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근데 남자 선수들 그거 익힌다고 땀 좀 뺐을 듯... 서로 눈치 보면서 따라 하는 거 같던데...

 

아무튼 다들 수고하셨고 김민석 이동원 두 남자 선수를 비롯 한국 유망주들도 잘 했고 다른 선수들도 잘했고 아무튼 덕분에 간만의 한국 나들이에 운 좋게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참 제프리 버틀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도입부 음악을 편집해 쓴 게 좀 신기하기도 했다. (바그너는 피겨 음악으로 잘 안씀) 


P.S.>> 개인적 이야기: 야나 루드코브스카야


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쇼 전에 가수 디마 빌란의 프로듀서였던 야나 루드코브스카야랑 마주쳐 짧게 얘기를 나누었다. 빌란의 전 프로듀서가 여기는 왜 왔냐고? 물론 남편(플루셴코) 따라 온 거지. 이왕 마주친 김에 음악 얘기 하고 싶은 게 좀 있어 붙잡았는데 지마 빌란이 스페인어 노래를 하니 이 여자도 혹 스페인어 하나 싶었는데 못하더라고. 그래서 ‘아 나도 영어 잘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다짐을 하며 영어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어디선가부터 내 말이 스페인어로 바뀌어 있는 거다.


이게 좀 문젠데 라틴아메리카야 어느 나라를 가든 스페인어만 쓰면 되니 언어 문제에 신경을 안 쓰다 한국행이 시작되면서 영어를 좀 써야 되는데 머리로는 영어를 생각하면서 입은 항상 중간쯤부터 스페인어를 하고 있는 거다. 하여튼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영어로 말했더라 헷갈려 하고 있으니 이 여자가 ‘세상에, 멕시코서 오셨네’ 이러면서 매고 있던 큰 가방을 뒤지더니 뭘 주섬주섬 꺼내서 하나, 둘, 세 개를 주는 것이다.


신분증이나 휴대폰 매다는 목걸이를 꺼내고, 고무 팔찌를 꺼내고, 또 남편 사진 찍힌 엽서를 꺼내 주는데 얼핏 보니 목걸이엔 토리노 올림픽 어쩌고 하는 글자가 찍혀 있고 고무 팔찌엔 또 솔트레이크시티가 찍혀 있어서 ‘ 지난 올림픽 때 사 놓은 기념물들인 모양이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주지, 그리고 엽서는 싸인도 없는데 뭐하러...’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 토리노 올림픽 기념품이네요, 귀한 걸 주시네 정말 고마워요" 이러고 나는 여행시 긴급 선물용으로 넣고 다니는 쪼끄만 과달루페 묵주 주고 하여튼 그렇게 대충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들을 다시 꺼내보니 토리노나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기념물이 아니라 토리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예브게니 어쩌고 하고 이름이 다 새겨져 있고 엽서에는 또 전 세계 언어로 인사 멧세지가 적혀 있는 게 자기들이 만든 선물용 기념품들인 것이다. 그것도 하나만 줘도 됐겠더니만 내가 멕시코서 왔다니 그랬는지 둘 다 꺼내 줬는데 아무튼 그걸 확인하고 나니 어째 좀 미안해지는 게 기분이 찜찜... 그래서 감사용 선물은 좀 넉넉하게 갖고 다녀야 되는데...  


안 그래도 그날 나중에 또 한 사진가한테 도움을 좀 받았는데 그때는 이제 과달루페 묵주도 없어 그냥 말로만 인사하고 말았다. 하기야 여기는 여행지가 아니라 내 나라인데 이렇게 도움 받거나 고마울 일이 자주 생길 줄 몰랐지. 그런데 난 지금 꼭 여행하고 있는 거 같다. 오는 비행기선 또 멕시코 다이빙 선수 파올라 에스피노사랑 같이 왔었는데 다이빙 선수라 또 참 예쁘더라고... 

 

아무튼 간에 결론은 Gracias a Yana, 받은 건 피겨하는 로레나 딸 주면 좋아하겠단 생각을 해봤는데... 주긴 뭘 줘, 걘 곧 그만둘텐데 내가 두고두고 갖고 다녀야지, 30 여년 피겨팬 인생, 음악 인생의 기념품 셈치고... 러시아 친구 안나한테 자랑도 좀 하고...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칼잡이 맥의 발라드와 서푼짜리 오페라에 관해 잘 소개된 웹페이지 주소... 

http://joogoon.net/68

 

쿠르트 바일의 부인 로테 레냐가 부르는 독일 원곡 Ballad of Mack The knife, 원곡은 이렇게 쿠르트 바일 특유의 냉소적인 노래... 요즘은 달콤한 스타일로 바꿔 별별 가수들이 다 부르는데 가사는 칼로 귀신같이 사람 죽이는 맥이 돌아왔으니 조심하라는 내용. 당시 독일사회에 대한 경고를 담은 가사...

http://www.youtube.com/watch?v=aPG9GcykPIY&feature=fvsr 

 

이게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 를 차용한 작품인데 예전에 문호근씨였나, 한국식으로 번안해서 음악극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연우 무대였던가, 한국 음악극 연구소였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때 그런 시도들 참 좋았었다. 고리끼-브레히트의 <어머니> 보면서 눈물 적시던... 극무대로의 그 열정이 살다보니 이렇게 흐려지는구나... 

 

 

 

 

 

(왼쪽부터) 조애니 로세트, 예브게니 플루셴코, 쉔 슈에, 자오 홍보, 아담 리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