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2009년 7월 16일자 (원본, 신문 편집판에선 아래 내용을 약간 축소 편집):
외국어 교육, 영어만이 능사인가 [장혜영]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닌 그 나라 문화의 정수, 다양한 외국어 전문가 양성과 우리말에 대한 선(先)교육이 절실해
한국에 들어올 때면 세관 신고서에 몇 일 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나를 써야 한다. 나는 처음 멕시코로 나갔다 들어 올 때 만 3 년여 남짓 있었기에 얼결에 ‘천일’이라고 썼었다. 1000 일이면 영화 <천일의 앤> 에서 앤 볼린이 헨리 8 세와 결혼해 딸 엘리자베스를 낳고 암투 끝에 사형 될 때까지의 시간이니 그리 짧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시간 동안 한국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던 나는 이 땅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텔미춤’ 이 뭔지도 모르고 ‘친절한 금자씨’ 가 영화 제목인 것도 모르는 별세계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내 눈에 한국 사람처럼 생긴 엄마와 아이가 영어로 대화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싱가포르 사람들인가, 그런데 정말 한국인 같이 생겼네’ 하며 중얼거렸더니 옆에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애 영어 교육 시키느라 일부러 영어로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선 영어 광풍이 불고 있었다. 주부들은 자녀들의 영어 교육 문제로 밤 새 고민을 하고, 직장의 중년 간부가 된 친구들은 승진 시험이 영어 시험이라며 퇴근 후 늦게까지 영어 학원을 다닌다. 신입 직원 교육을 맡은 친구는 요즘 신입들이 영어는 잘 하는데 실무는 아무 것도 몰라 골치가 아프다고 투덜댄다.
유행을 선도하는 가수들 이름도 십중팔구는 외국 명이요, 언론에서까지 ‘시크한’, ‘빈티지 풍’ 등등 국적불명의 외래어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글쎄, 한국처럼 자국 밖에선 잘 통용되지 않는 언어를 쓰는 경우 외국어도 잘 하면 세계화 시대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긴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 국민이 영어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 까지야 있을까?
멕시코에서 쓰는 스페인어 (에스파냐어, ‘카스티야어’라고도 함) 는 전세계 20 여 개 국가에서 사용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영어에 별로 능통하지 않은 편이다. 일단 워낙 많은 나라들이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통에 주요 서적이나 자료의 번역이 많이 되어 있어 외국어에 대한 목마름이 적은 편인데다가, 철학이나 의학 등 기초 학문 분야에서는 로망스어 계열인 스페인어가 오히려 기초 학문의 원천인 라틴어의 원형을 많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학문 용어를 영어를 참조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인 것이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언어 표현 체계가 달라서 영어로 얘기하면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 알아들으면서도 말은 스페인어로 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에는 ‘언어는 바로 우리의 문화’ 라는 문화 보호주의적인 측면도 크게 작용을 하고 있다.
특히 20 여 스페인어 권 국가의 언어적 모국인 스페인의 경우는 극단적인 자국 언어 보호 정책을 취해서 한때는 외국 영화도 전부 스페인어로 더빙을 해 극장에서 상영했었는데, 과거 식민 시대의 영광을 잃어버린 스페인이 지금도 계속해서 세계 20 여 개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세력 국가로 남을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스페인어’ 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들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접근하느냐 아니면 그저 영어로만 접근하느냐 하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국과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는 멕시코는 언어가 국가적인 자존심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고, 스페인어 보호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페인 같은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멕시코와의 인연이 다 끝나지 않았는지, 1년 반 만에 나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집에 케이블 TV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한국의 아리랑 방송이 새롭게 나오고 있었다. 영어 위주 방송이라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 보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그새 더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흐뭇하게 보았다. 그런데 채널을 돌려보니 중국의 CC-TV 또한 새 채널로 송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중앙 방송은 백 프로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CCTV 에스파뇰 (CCTV Español)’ 채널을 만들어 전 세계 스페인어 국가에 송출하고 있다. 이 채널의 주 내용은 중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월함을 소개하는 것으로,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중국어 교실 프로그램 또한 포함하고 있다.
언어는 문화의 핵심이고, 그 나라의 간판이다. 나의 언어도 잘 모르면서 외국의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외국어를 잘 구사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언어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외국어 인력을 양성한다면 왜 그것이 오직 하나 영어야만 할까? 우리가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전세계의 사람들이지 영어 쓰는 나라의 사람들만이 아닌데도 말이다.
영어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의 경우와 같은 가족의 해체마저 불사하고 있는 지금, 그 현상을 강요하다시피 한 정책 당사자들은 ‘언어’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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