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자동차 주간 사보 2009 년 7월 13일자에 실은 글 원본... 편집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은 있을 수 있음 )
눈 덮인 7월의 파타고니아, 세상의 남쪽 끝 그 순결의 땅 – 아르헨티나.칠레의 파타고니아 지역
장혜영
스키 코스로 유명한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의 세로 카테드랄 (Cerro Catedral), 사진은 여름의 풍경이다. © 장혜영
‘남미’ 혹은 ‘남아메리카’ 라고 하면 흔히들 뜨거운 열대의 땅을 먼저 떠올린다. 1년 내내 햇볕이 쨍쨍한 더운 날씨에 베짱이처럼 그늘에서 노래하고 춤추거나 축구공 차는 것을 즐기는 낙천적인 사람들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그것은 적도주변의 열대 지역에 한정된 얘기고 실제 남아메리카의 남쪽은 눈에 뒤덮인 얼음의 땅이다. 그 땅을 여기 사람들은 ‘파타고니아 (Patagonia)’라고 부른다.
지구 반대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참 에어컨 아래에서 땀을 닦으며 빙과류를 먹고 있는 지금 이 지역은 눈에 뒤덮이는 한 겨울에 들어가게 되고, 그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칠레의 산티아고 등 북쪽의 도시 사람들은 추위에 대비해 중무장을 한 차림으로 스키를 타러 몰려온다. 그런 스키 바캉스로 유명한 곳이 아르헨티나의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 (San Carlos de Bariloche, 이하 바릴로체) 로, 파타고니아의 관문이 되는 휴양도시인데 스위스 등 유럽의 호반 국가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고향집을 본 따 만든 예쁘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은 아름다운 호수들을 따라 칠레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거대한 빙하들이 아닐까. 바릴로체에서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나오는 빙하 국립 공원 또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위치해 있는데, 아르헨티나 쪽에서 빙하 국립 공원을 가려면 칼라파테 (Calafate) 라는 작은 도시를 거쳐야 한다. 신비한 푸른 빛이 감도는 아르헨티나 호숫가의 작은 마을인 칼라파테는 그야말로 바람의 도시다. 아무 것도 없는, 산도 언덕도 나무도 거의 찾기 힘든 허허벌판에 끊임없이 귓전을 스치는 횡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 집도 모두 단층 짜리요, 이 황량한 땅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양을 치는 것뿐이다. 물론 관광 루트가 생기며 호텔 업이나 관광 안내, 빙하로 가는 배 운영 등 지역 산업이 활발해 졌지만 그 이전까지 이 땅에서 사람들은 눈과 바람과 싸우듯 살아야만 했다.
빙하 국립 공원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스페가찌니 (Spegazzini) 빙하. ©장혜영
그렇게 열악한 땅 파타고니아에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길을 내고 도시를 만들었을까? 사실 파타고니아 지역의 개발은 죄수들의 노역으로 이루어졌다.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 이 땅 파타고니아로 유형 보내진 죄수들이 건설한 대표적인 곳이 세상의 남쪽 끝 도시인 우수아이아 (Ushuaia)로, 아메리카 대륙의 끝을 넘어가야 있는 큰 섬인 티에라 델 푸에고 (Tierra del Fuego, '불의 땅‘ 이라는 뜻) 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이 곳은 남극에 가장 가까운 도시로 6, 7 월이 되면 그야말로 눈으로 팍 뒤덮여서 온 사방에 흰색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해도 짧아져서 아침 10 시쯤이 되어야 동이 트고 모든 집의 창문과 대문이 이중 문으로 설치되어 있는, 살을 에는 추위에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귀에 이상이 생기고 15 분 이상 밖에 돌아다니면 볼이 얼어서 트는 이 곳은 그러나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에서 성냥팔이 소녀가 들여다 보던 행복한 집처럼 큰 창문에 예쁜 커튼을 단 집들이 흰 눈에 덮인 거대한 산 아래 줄을 지어 한 동네를 이루고 있다. 이 도시 역시 북유럽 계 이민자들의 후손이 많고, 그들의 선조들은 역시 북유럽의 고향을 생각하며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 묘사되었던 것 같은 마을을 만들었던 것이다.
남극으로 가는 기지로서, 세상의 남쪽 끝의 동화 같은 마을로서, 또 배를 타고 나가면 펭귄을 볼 수 있는 청정 자연 지대로서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 관광 산업의 새로운 개척지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놓은 동화 속 같은 동네라고 해도 이 살인적인 추위와 열악한 자연을 낀 도시에서 과연 모자란 것이 없으랴, 우수아이아에는 야채와 과일이 모자라서 사람들이 일종의 영양 결핍을 겪는다고 한다. 또 시내 중심가야 잘 정돈되어 있고 새벽마다 열심히 제설작업을 해 차도 그럭저럭 잘 다니지만 외곽의 경우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 통행이 정지되는 일이 부지기수라 그렇게 고립되어 물자가 바닥 날 경우 사냥을 해서 야생 동물을 잡아 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고 한다.
여름에는 백야 현상이 나타나 밤에도 해가 지지 않지만 겨울이면 해가 너무 짧아져 햇빛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이 세상의 끝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싸우며 또 그 자연에 순응해 함께 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아직도 청정의 땅으로 순결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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