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케이블 TV Cablivision 달고 났더니 예술 채널 보는 재미가 상당한데, 내가 전에도 여러 번 소개했던 베네수엘라의 천재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빈곤층 아이들이 국가정책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아 오케스르라를 이룬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얘네 공연을 늘 화질 음질 다 안 좋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같은 것으로만 봐왔었고 서울에 연주하러 왔을 땐 바빠서 못 올라갔었는데, 이번에 2007년 봄 루세른 공연 실황을 보니 아니, 정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청소년, 솜털이 보송보송한 한데다 맑은 눈빛에 티없는 미소를 머금은 ‘애’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도 약간의 삑사리나 소리가 뭉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귀에 뜨이는 것은 얘들의 남다른 감성이다.
여기 라틴아메리카 애들의 강점이 저런 ‘감성적 표현’ 인데, 어려서부터 어디서든 음악을 듣고 멋진 자연도 눈앞에 보이고 해서 그런지 테크닉적으로는 좀 실수를 할지 몰라도 풍부한 표현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리 하루 8 시간 이상 스파르타 식 혹은 한국식으로 연습한다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저런 음악적 감성 혹은 감수성인데, 그래서인지 약간의 풋풋함이나 실수가 있음에도 그들의 연주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마르케스의 단손 처럼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표현에 더더욱 강점이 있었고… 게다가 자기도 겨우 20대지만, 그래도 선배고 어른이라고 단원들을 잘 이끄는 두다멜의 리더쉽, 연주 하나하나 끝날 때 마다 단원들을 잘했다고 일으켜 세우고 격려해 주는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후 2007년 가을 쯤에 찍은 독일 DW 방송에서 만든 이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The promise of music / la musica de esperanza, DW/UNITEL, 2008). 역시나, 아니나다를까, 얘들의 성공 뒤에는 어려운 환경을 뒤집어 보려는 눈물 나는 연습과 노력, 피 말리는 경쟁이 있었고, 특히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난 후인 이즈음에 단원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일시적인 선세이션이 아닌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각자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의 본에서, 그것도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 '베토벤' 페스티발의 연주가 있던 날 이들을 이끄는 지휘자 두다멜은 연주 직전까지 껌을 씹고 있었다. 야구 선수들이 많이 그러는 데 껌을 씹는다는 것은 긴장해서 이를 악물고 덩달아 몸이 굳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 시대의 천재라는 두다멜도 연주 전에는 그렇게 껌을 씹으면서 긴장감을 풀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다 연주 직전에는 성호를 긋고 심호흡을 하다가 결심을 한 듯 연주장으로 들어서는데 그 껌을 뱉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들어간다. 어쩌려고? 아마 그냥 꿀떡 삼키지 않았을까…
하여튼 그렇게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의 연주를 시작하는데 우와, 연주가 너무 좋은 것이다. 몇달 사이에 소리가 확연하게 발전한 느낌이었는데 하기야 베토벤의 고향에서 베토벤 곡 연주를 해야 되니 얼마나 열심히 했겠는가... 그들의 강점인 감성에다가 테크닉적인 노력이 더해지니 그 독일의 까다로운 관객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칠만 했다. 그리고 솔직히 내 생각에는, 그들이 주목을 받고 후원을 얻으면서 좀더 좋은 악기로 교체를 좀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순 내 생각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들은 실력을 다시 한번 인정 받았고, 그래서 단원들 중 상당수들은 유럽의 오케스트라로 스카우트 되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먼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그들이 유럽의 오케스트라에서 캐리어를 쌓고 그들의 음악세계를 심화 시킨다면, 베네수엘라의 후배들에게 또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가 있을 것이다.
The promise of music 감독과 두다멜
Enrique Sánchez Lansch and Gustavo Dudamel
사진출처: http://www.promise-of-music.com/index_e.html
요즘은 클래식 음악이 사장길에 들어섰다고들 한다. 젊은 친구들은 이제 클래식을 듣지도 않고, 너무나 어려운 클래식 음악가의 길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상 아마도 아직까지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 뿐 아니라 음악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 라틴아메리카계 음악도들이 세계 음악계로 도약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내가 안타까운 것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30 분 이상 들어야 하는 클래식 곡은 커녕 음반 한장 듣는 것, 아니 곡 한 곡 전체 듣는 것도 지겨워들 해서 첫 마디에서 흥미로운 멜로디가 안 나오면 노래가 뜨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똑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노바디’ 류의 이른바 후크송만 기획한다고 하는데 아니, 음악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위안을 주는데 그 음악의 세계를 우리 한국 청년들은 모르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 이유야 애들 탓이 아니고 돈 되는 거에만 관심 있는 우리 어른들이 조성한 것인데, 그래서 아직도 웬만하면 기타는 칠 줄 알고, 함께 모여 노래할 줄 알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여기 라틴 아메리카 청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천재를 부러워하지만, 사실 긴 인생에 10대 20대에 정상에 서버리는 음악 천재들이 그리 행복한 건 아니다. 10대 20대부터 최고 수준을 유지해 줘야 하니 긴 인생에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 면에서 20대 초반에 지휘계의 스타가 된 두다멜은 상당히 골치 아픈 입장에 서 있는 셈이기도 한데,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니 그는 또 다르게 자기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유명세하는 데도 어린 단원들이랑 마치 친구처럼 대화하고, 불편한 저가 항공을 타고도 불평없이 잘만 돌아다니는 이 사람의 역할이 사실 크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에 보면 엘 시스테마 하부의 또다른 오케스트라, 그러니까 좀더 어리고 그래서 아직 실력이 가다듬어지지 않은 베네수엘라 유소년 오케스트라가 나오는데 삑삑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던 이 오케스트라를 두다멜이 지휘하니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다멜은 성공한 지식인의 사회 봉사 혹은 사회 환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나 이제 성공했다고 뒷통수 때리고 내 갈 길만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두다멜의 이런 면은 칭송 받아 마땅하지 않을지, 하기야 사실 그래서 더 유명세를 타게 된 면도 있지만 아무튼 아직 젊지만 이미 큰 일을 해줬으니 앞으로야 뭘 어떻게 살든 알아서 잘 살겠지… 아무튼 영웅 교향곡을 연습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도 좋았고, 비디오나 녹화 DVD 가 있으면 보관하고 싶었는데 Film&Arte 채널 앞으로 열심히 보게 될 듯 하다.
P.S.1.>> 이 다큐, The promise of music 은 독일에서 만든 만큼 가난한 나라 베네수엘라 에 대한 선입견이 좀 보이는 게 사실인데, 그런 점을 빼고 보면 괜찮았다. 나는 두다멜과 아이들이 영웅 교향곡을 연습하는 부분, 곡을 만들어 가는 부분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또 베네수엘라의 고속도로, 산 동네 시장 등등 추억의 장소들이 많이 나와서도 좋았다. 언제 다시 베네수엘라에 가보려나…
P.S.2.>> 영웅 교향곡을 연주하고 나서, 무대 뒤로 들어온 두다멜에게 메니저가 컵으로 물을 줬더니 그걸로 모자란다고 아예 병째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지휘자들은 정말 좀 까다로워도 됨… 얼마나 힘들지… 그리고 두다멜도 그렇고 이 오케스트라도 그렇고 전부 연미복이 아닌 양복을 입는다. 요즘은 양복이 대세인가...
P.S.3.>> 베를린 필하모니가 두다멜의 지휘로 거의 같은 레파토리, 영웅 교향곡 말고 이 청소년 교향악단이 자주 연주하는 마르케스 단손 등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이후 또 보았다. 물론 연주야 베를린이 거의 완벽하다, 그런데 테크닉을 떠나서 다른 맛을 준다는 게 예를 들면 단손을 연주할 때 리듬을 타고 흐르는 건 오히려 청소년 교향악단이 더 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단손의 리듬을 들어온 사람들의 차이인지... 그리고 마르케스의 단손 2 번을 아이들이 연주할 때 좀 엉키는 느낌이 있었는데 베를린 때도 그런 느낌이 없지 않다. 대위법적으로 엉켜드는 형태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까다로운 곡인 듯 하다.
그리고 찾아 보니 이 다큐멘터리 한국에도 출시 되어 있다 한다. '프로미스 오브 뮤직/음악의 약속' 이라는 제목으로... 그런데 베네수엘라 특유의 스페인어 대사들, 아이들 인터뷰가 어떻게 번역 되었을지 궁금하다. 이 외에 '엘 시스테마' 라고 후에 만든 또다른 다큐가 있는데 이거는 오케스트라 보다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시스템에 더 촛점을 맞추었다 한다. 그런데 역시 독일에서 제작했다. 독일에서 이래 저래 관심이 많은 듯..
아래 주소 누르면 두다멜이 10대 후반 때 바이올린 연주한 거 실황 녹음을 오디오로 들을 수 있다… 연주도 좋지만 곡도 좋아서… 그런데 한 개인이 비공식적으로 녹음한 거라 진짜 두다멜 연주가 맞냐는 답글도 있는데 올린 사람은 분명 진짜라고… 그런데 실제 두다멜이 아예 꼬마일 때 바이얼린 연주하는 동영상 봤는데 신들린 듯 보였다… 그래서 음악 천재라 판단해 엘 시스테마에서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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