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1월3일 서울에 돌아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랜만에 르네상스 미술을 넉넉하게 만끽했다.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나흘 밤 연속으로 오페라를 감상했다. 섣달 그믐날 밤은 <피가로의 결혼>을 즐겼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니 거리엔 사람들로 넘쳐났고 밤 하늘에는 폭죽불꽃들이 터졌다. 숙소에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힌 뒤 텔레비전을 켰다. 뜻밖에도 거기서 본 것이 바로 조금 전에 본 오페라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멋진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그 얘기를 써 보고자 한다.
유럽 유선텔레비전 방송에 <아르테(Arte)>라는 예술프로 전문 채널이 있다. 섣달 그믐날 밤 <아르테>가 방송한 것은 어느 오케스트라의 새해맞이 콘서트 장면이었다. 연주자가 모두 젊고 지휘자도 아직 젊었다. 무엇보다 연주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뛰어난 기량이었다. 객석의 풍경도 여느 클래식 연주회와는 달랐다. 관객 중에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많고 모두 편안하게 즐겼으며, 진정으로 음악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상류시민의 사교장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대체 이게 어디 오케스트라지? 나는 몹시 구미가 당겼다.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Simon Boli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가 그 오케스트라 이름이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 오케스트라가 올해(200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음악제 공식 팸플릿을 보고 알았으나 별로 신경쓰지 않은 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집에 돌아와 재빨리 잘츠부르크 음악제 팸플릿을 꺼내 보았다. 거기에 ‘하모니에 바친 대가족’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필자는 셜리 앱소프 Shirley Apthorp)
11살 때 에디슨 루이스(Edison Ruiz)는 어머니의 보잘것없는 수입에 보태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포장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루이스의 행동은 나날이 폭력적으로 돼갔고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다. 술, 마약, 갱들의 싸움으로 가득찬 카라카스의 거리는 젊은이에겐 위험한 유혹이었다. 그때 어느 이웃사람이 루이스 가족에게 지역 음악학교 얘기를 해주었다. 다음은 루이스의 얘기. “그들은 내게 비올라를 주었다. 몇 달 뒤 그들은 나를 국립청년오케스트라에 들여보냈다. 첫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이었다. 물론 그때는 나는 전혀 연주를 할 줄 몰랐다. 그들은 나를 가장 깊은 곳으로 던져 넣었다. 이놈들이 미쳤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너는 할 수 없어’라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았다.”
15살이 됐을 때 루이스는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베이스콩쿠르에서 수상했고, 16살에 독일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17살이 됐을 때 그는 베를린 필에 역대 최연소 멤버로 채용됐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예외라고? ‘예스’이자 ‘노’다. 베를린 필의 모든 연주자는 예외적이다. 그러나 오늘의 베네수엘라에는 국가적 음악교육시스템에 의해 길거리에서 구출돼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로 거듭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루이스는 고립된 예외가 아니다.”
이 국가적 음악교육시스템을 창시한 것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라는 인물이다. 30년 전 그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뭔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베네수엘라에는 오케스트라가 두 개밖에 없었다. 아브레우는 지하주차장에 11명의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최초의 리허설을 하고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브레우는 이윽고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아브레우는 이렇게 말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것이 음악교육을 통한 하나의 사회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빈곤은 고독, 슬픔, 무명을 의미한다. 오케스트라는 기쁨, 의욕, 팀워크, 성공을 향한 열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모니에 바친 하나의 가족인 것이다.”
세계적 음악가들도 주목하며 응원하고 있다. 베를린 필 상임지위자 사이먼 래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이다. 흡사 숲 속의 버섯과 같다. 이것은 음악의 미래다. 그리고 사회를 바꿔가는 주체의 하나다.”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도 한 해 두 달은 베네수엘라에 머물며 이 오케스트라와 공연하고 있다.
이쯤에서 고백해 둔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게리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솔라 등을 배출한 아르헨티나를 빼고나면 다른 중남미 제국에는 이렇다 할 클래식 음악 작곡가나 연주자가 없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에 이토록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무의식 속에 안고 있던 편견이다. 그 편견이 보기좋게 깨어진 것이다. 나는 매년 여름이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가는데, 올해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직접 듣게 되는 특별한 낙이 하나 더 추가됐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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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대한 기사는 많지만 이 기사가 특히 마음에 들어 좀 오래됐지만 올려봤는데
올해 겨우 스물 일곱살인 이 유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자기도 지휘자로서는 아주 어린 편이면서 경험적고 어린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잘 이끌어내 세계적인 선세이션을 일으키며 스타가 되어 이미 작년부터 LA 필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데 지휘대에 안 올라서면 안 보일 정도로 작은 키에다 열정이 넘쳐나다 못해 무대에서 떨어질 것 같은 지휘 스타일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해외 유학파도 아니고 el sistema 에서 공부한 베네수엘라 국내파인 그는 바이얼린을 하다가 천재성이 발견돼 지휘로 전향하여 10 대 후반부터는 유럽에 연수를 가 지휘 경험을 쌓으면서 본격적인 지휘 경력을 시작했는데 베네수엘라의 모짜르트라 부를 만한 천재지만 집이 가난해 el sistema 의 혜택을 받지 않았으면 그 천재성도 사장되고 말았을 거라고...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환생한 모짜르트를 el sistema 라는 교육 시스템이 살려낸 셈인데 그의 부모도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라 어려서 부터 음악적 환경은 갖추고 있었던 셈... 현재는 el sistema 의 전도사가 되어 베네수엘라 음악 교육 시스템을 홍보하고 있고 또 LA 필을 맡은 만큼 LA 의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라고...
구스타프 두다멜과 두다멜의 와이프, 본인들의 셀프 사진.
두다멜의 홈페이지 => http://www.gustavodudam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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