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가을에 라틴 시네마 세상 http://latincine.netian.com 에 먼저 남겼던 글 ...
스페인 축구 관전기 [1] - 레알 마드리드 와 Racing Genk
레알 마드리드는 2001-02 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다.
스페인은 참 이상한 동네다.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더니 세관 검사는커녕 입국 심사도 없다. 입국도장 찍어야 되지 않냐고 했더니 그런 거 안하니까 그냥 짐 찾아서 얼른 집에 가란 말뿐이다. 그렇게 마드리드에 도착한 다음날, 카메라도 숙소에 놔두고 입국도장 찍어 주는 경찰서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맞닥뜨린 일단의 훌리건들(?) 덕분에 나는 얼떨결 에 그 유명한 UEFA 챔피언스리그, 유럽 최고의 프로 통합리그 경기를 볼 기회를 잡게 되었다.
주말이 아닌 주중에 축구경기가 있는 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는데 목에 파란 목도리를 감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 그들을 쫓아가다 보니 축구장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날 레알 마드리드 팀과 조 예선 경기를 펼칠 벨기에의 PSV Genk 팀 응원단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쫓아 축구장까지 간 나는 다행히도 표를 얻어 드디어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은 정말 축구의 나라다. 스페인에 있으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TV 에서 매일 같이 다채로운 축구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옆 나라 포르투갈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스페인은 세계 최고수준의 프로리그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축구 경기 분석이나 중계 프로그램 노하우가 달랐다.
그런데 당시 그러한 스페인 축구계의 모든 관심은 레알 마드리드로 새로 영입된 브라질 출신 선수, 바로 호나우두 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사실 이날 경기도 호나우두가 나왔다면 표가 매진됐을 게 분명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호나우두는 부상으로 아직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에 등장하지 않고 있었고 대신 그의 부인, 밀레나 도밍게스 가 바야돌리드 여자 축구팀에서 뛰는 모습이 내내 TV 에 흘러 나오고 있었다. ( 호나우두의 이름을 따 ' 로날디냐 Ronaldinha ' 라 불리며 남편 못지 않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
여자 축구 선수 호날디냐, 호나우두의 부인
어쨌든 경기장에는 호나우두도 호날디냐도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레알 마드리드의 라울, 피구, 지단, 살가도, 호베르투 까를로스, 모리엔테스 등이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 둥그렇게 둘러서서는 웃고 떠들며 서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경기장은 7 만 안팎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규모의 전용구장으로 깨끗하고 산뜻했는데, 40분전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경기장은 경기 시작 시간인 8 시 45분에 이르자 어느새 빈틈 없이 꽉 차 있었다.
관람석 3 층 한 구석에는 나와 함께 왔던 벨기에 Genk 팀 팬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응원을 하고 있었고 챔피언스리그의 음악이 웅장하게 울리자 경기장 중앙 원을 덮고 있던 은빛 챔피언스리그 대형 마크가 들어올려지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날 경기는 6 대 0, 레알 마드리드의 대승으로 끝났지만 관중석에서 느낀 것은 역시 어딜가나 사람들 생각은 똑같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 대부분 호나우두 의 영입으로 하루 아침에 기약없는 벤치 신세가 된 모리엔테스를 동정하여 그의 이름이 소개될 때 박수를 치고 연호를 하는 등 격려를 해주고 있었고, 또한 라울이 부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내 뒷줄에 앉은 한 아저씨가 ' 아무리 라울 이라도 못하면 빼야된다 ' 뭐 이런 조의 말을 크게 떠들었고, 그러자 내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 며 반박을 해댔다.
이후 경기 내내 두 사람은 한 마디도 지지않고 말싸움을 벌였고, 주변 사람들도 ' 그래도 라울인데 믿어 봐야지 ... ' ' 아냐, 라울이 부진한 건 사실이잖아 ' 이러며 쑥덕이기 시작했다.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워낙 시끄럽고 창창했기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났던 나는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라울이 골을 넣는 것 뿐이다 싶어 옆에서 혼자 열심히 라울을 응원했는데, 그 소리를 정말 라울이 들었는지 후반 중반 1 어시스트 1 골을 기록하며 두 사람의 시끄러운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준 뒤 6 만 6 천여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교체되어 나갔다.
그래서 그날의 관람은 서로 말싸움을 벌이던 아저씨 아줌마도, 또 비록 6 대 0 으로 대패했지만 먼 곳까지 와서 끝까지 응원해 준 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Genk 선수들과 깔끔한 대승을 거둔 레알 마드리드 선수 들도 기분좋게 서로 화해와 격려의 악수를 하며 끝이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라울의 입지가 점차 내리막길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았다. 17 살의 어린 나이에 여린 체격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차지하면서 동시에 스페인 축구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라울...
그로부터 8 년이 지난 지금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는 호나우두와 신예 구티에게 밀리고 있었고, 국가대표 팀에서는 또 호아킨과 구티 라는 20 살 안팎의 어리고 힘있는 후배들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이후 라울은 유로2004 예선 경기에서 다소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어 경기에 뛰지도 못하게 됐으니 라울과 모리엔테스,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미소년 콤비의 동반 몰락은 어디
까지 갈 것인지, 어느 선에서 극복될 것인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시벨레스 광장의 여신상에 올라간 라울과 모리엔테스(두 사진 모두 오른쪽이 모리엔테스)
[ 2002 년 9월 25일 02-03 년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경기 : 레알 마드리드 대 Racing Genk ] * 경기 시작시간 스페인시간 오후 8 시 45 분 * 최종 스코어 : 레알 마드리드 6 : Racing Genk 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구장, 마드리드) * 골 : (44): 구티, (45): 미첼, (55): 피구-페널티킥, (64): 구티, (74): 셀라데스, (76) 라울. ( 스페인 축구 탐방기는 다음 편에 계속 ... )
글: 장혜영
사진: 네띠앙의 홈페이지 서비스 중단으로 사진 자료 출처에 대한 자료들이 다 날아가 정확한 표기가 안되고 있습니다. 위 글 속의 사진들은 모두 스페인 언론에서 뽑아온 것임이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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