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시네마' 간판을 아직 달아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유명한 <판의 미로 (El Laberinto del Fauno, 2006, 멕시코 스페인 미국 합작)> 를 오늘에야 보았다.
다름 아닌 멕시코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한 영화인데도 그때 뭐가 그리 바빴는지… 2006년 작인데 그때 <바벨> 만 보고 말았었나... 보고난 느낌은 근래에 본 최고의 작품이더라는 거, 또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너무 슬펐다는 거…
영화의 배경은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독재 시절이었던 1940년대, 무지막지한 권위주의자인 비달 대위에게 재혼해 온 엄마와 어린 딸이 파시스트 정권에 반대하는 파르티잔들을 소탕하기 위해 차린 군대 막사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새 아빠 비달 대위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고 아내나 여자 아이 알기를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그저 아들을 얻고 싶어서 재혼을 한 것인데, 무서운 새아빠와 시름시름 아픈 엄마 대신 메르세데스라는 가정부에게 정을 붙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오필리아에게 어느날 요정들이 나타나 판 (Fauno, Faunus,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머리에 염소 뿔난 모양의 목신) 에게 그녀를 데려다준다. 판의 말인즉슨 오필리아는 과거에 지하세계를 떠나갔던 공주의 환생으로 다시 공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세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하는데…
최근에 유행하는 이른바 ‘판타지류’ 의 이야기 공식을 40년대 암울한 스페인에다 절묘하게 접목시킨 이 영화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현실은 눈알이 튀어나오고 피가 튀기는 판의 미로 속 환상 세계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정치적 상황도 잔인하지만 엄마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리는 오필리아의 현실 또한 못지 않게 비참하다. 그뿐이랴, 살길이 막막해 잔인하기 그지없는 사람과 재혼을 했던 오필리아 엄마의 처지는 어떠했던가. 판타지 세계에서도 도저히 상상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었던 게 당시 스페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위험을 무릅쓴 채 비달 대위를 제거하기 위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의사는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고문으로 몸부림치는 환자를 안락사 시키고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포기한다. 아무리 인간이 잔인해져도, 또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선한 이들도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지만 스페인 영화의 끝은 또 해피엔딩의 낙관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의 세상이란 말처럼 쉽게 오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인지 이들의 영화는 늘 섣부른 낙관주의를 경계하며 끝이 난다.
기예르모 델 토로, 멕시코에서도 천재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지는 못하더니 그야말로 천재적인 대본을 써서 기가 막힌 영화를 한편 만들었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아니면 상상해 낼 수 없는 그 새로움을 창조하는 능력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흘린 눈물 닦고 정신 차리려 하지만 간만에 좋은 영화,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영화를 본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이 영화 만들고 나서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게 <헬보이 2> 라니, 기예르모 감독도 아무리 희망을 꿈꾸어 봤자 현실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그냥 아직도 슬프다, 달빛 아래 오필리아의 마지막 모습이…
감독과 출연 배우들, 가운데 뚱뚱한 사람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사진들 출처: http://www.bsospirit.com/comentarios/laberintofauno.php DDBSpawn (David Don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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