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시네마·문화 Cine y cultura

[영화 감상글] 북극의 연인들

alyosa 2008. 12. 14. 22:03

  (예전 2002년 http://latincine.netian.com 에 올렸던 다소 부족한 내용의 영화글 복구)

 

[영화 심층 분석4 / 북극의 연인들]

  

북극으로 간 로미오와 줄리엣,혹은 가족 해체 시대의 운명 비극  

 

 눈덮힌 스페인에서 해가 지지않는 백야의 핀란드까지,

 스페인 영화 < 북극의 연인들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1998)>    

 

 정신과 의사로써의 안정된 삶 대신에 영화감독으로의 불확실한 미래를 택했던

 의학도 출신 스페인 감독 훌리오 메뎀의 대표작 < 북극의 연인들 (98)> 은  

 북극권에서의 재회를 꿈꾸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이지만 낭만적인

 사랑의 공식 대신에 정신분석학의 정석을 따르며 시공간이 엇갈려 들어가는 

 나레이션으로 돌고도는 운명과 사랑,성장의 이야기를 그려낸 아주 독특한 작품이다.

 

               [ 줄거리 ]

 

  여덟살 소녀 아나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 순간 부모가 갓 이혼한 동갑내기

  소년 오토와 마주치고, 아버지의 사진 속 유년 시절 모습을 닮은 그가 죽은

  아버지의 분신임에 틀림없다는 공상에 빠져 오토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오토가 아나의 학교를 향해 띄운 종이 비행기로 인하여 엉뚱하게도

  아나의 어머니와 오토의 아버지가 가까워 지게 되고, 둘이 재혼함에 따라

  그들은 졸지에 남매지간으로 묶이고 만다. 

  

  

 언젠가 함께 북극권(Circulo Polar)에 가자고 다짐하는 10 대의 아나와 오토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오토와 아나는 서로를 이성으로 받아 들이게 되고, 

  부모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나 이혼후 홀로 쓸쓸하게 살고 있던 오토의 

  친어머니가 시체로 발견되자 오토는 그것이 아나에게 빠져 어머니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의 탓이라 믿게 된다. 

 

  오토는 눈덮힌 산에서 뛰어 내리지만 아나에게 발견되고, 그렇게 자살 시도가

  무위로 끝나자 집을 나가 버린다. 이후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운명으로 인해 다시 만나지 못하고, 기다림에 지친 아나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의지하여 부모로부터 탈출하려 한다. 

 

 

 

    오토 (Fele Martinez) 와 아나 (Najwa Nimri) 는 

   바로 등 뒤에 있는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끝내 어긋나 버린다.  

 

  어머니마저 오토의 아버지를 버리고 새 연인과 함께 호주로 떠나 버리자 아나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오토와 함께 항상 꿈꾸었던 그곳,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북극권( Circulo Polar / Artic circle 위도 66.33 )으로 떠나는데  

 

  거기서 우연히 오토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경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에서 이

  핀란드까지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나는 자신의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전하는 편지를 오토에게 띄운 뒤 수평으로 해가 돌고 도는 백야의 태양을 바라보며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아나의 이름을 수없이 반복해 쓰며 비행기를 몰던 오토 역시 아나를 만나기위해 경비행기를 몰고 Circulo Polar 로 향하게 되는데...

 

  [ 오토 / 아나의 관점이 교차되는 나레이션과 시공간을 초월한 구성 ]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순환하는 백야의 태양처럼 똑같은 이 영화는 북극권에

  가 있는 아나와 비행기를 몰고 그녀에게 향하는 오토가 각각의 시각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또 자신의 삶에 대하여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두 사람의 나레이션이 계속 교차하다가 어느 순간 오토와 아나의 관점이

  합쳐진 뒤 아나의 눈에 비친 오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끝을 맺는다.

 

            

   북극권에 가 있는 아나와 그녀에게 향하는 비행기 안의 오토, 영화는 두 사람의 나레이션을 번갈아 가며 들려준다.      

 

  똑같은 상황을 두 사람 각각의 관점에서 다르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이후에 나온 한국영화 <오! 수정 (2000)> 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숟가락이 포크로 변하는 식의 기억의 차이나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연출된 장면을 통해 보여준 <오! 수정> 에 비하여 이 영화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싹트고 변화해 갔는가를 개개의 나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죽은 친어머니의 시체를 오토가 발견하게 되는 장면에서, 영화는 청년이 된 현재의 오토와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았던 여덟살 때의 오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주는데, 매우 인상깊게 잘 연출된 이 대목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방황을 거듭하게 되는 오토의 행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여덟 살 때부터 쌓여온 감정의 폭발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감독의 아들 페루 메뎀이 열연하는 여덟살 오토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순간들 

 

   또한 오토가 눈 속에 파묻혔다 구조되는 대목은 마치 동화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오토가 환상 혹은 꿈 속에서 스키를 탄 사람을 따라가면 어머니 곁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 어머니 대신 아나를 발견하는 이 대목에서 오토의 모습은 여덟살 소년 오토의 모습으로 바뀌어 진다. ( 그러나 아나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될는 덟살 소년 오토가 등장하지 않는다. ) 

 

   이런 식으로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구성으로 두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을

   매우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만화적인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감독은 ' 반복되는 운명과 순환되는 삶 ' 을 강조하기 위해 역앵글 쇼트로 인물을 앞뒤에서 번갈아 가며 보여주거나 360 도 회전하는 동작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넣고 있으며 부감쇼트어안렌즈를 이용한 특이한 촬영 역시 마다않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독특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싸진 영화의 분위기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내기 힘든 시적인 서정성으로 통일되어 사랑과 운명에 관한 수필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과  Otto, El Piloto 의 의미 ]

 

   배경 도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이 영화에서 헤어졌던 아나와 오토가 만날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 장면은 마드리드의 유명한 마요르 광장에서 촬영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속에서 가장 의미깊게 등장하는 장소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이다.  

 

   이 지역은 스페인 내전 때 독일군 공습에 의한 게르니카 대학살로 유명한 곳이지만 또한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단체인 ETA 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이 영화의 감독 훌리오 메뎀의 고향이 바로 ETA의 거점 도시인 산 세바스티안이다 ) 

 

   영화 속에서 게르니카 공습은 여러번 회자되고 있고 오토의 할아버지는 바스크 모자를 쓴 바스크인으로, 오토의 어머니는 독일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 Otto' 라는 주인공의 이름 역시 게르니카 공습 때 오토의 할아버지에게 구조되는 독일군 조종사 Otto, El Piloto (조종사 오토) 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결국 조종사가 되는 오토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 Otto, El Piloto ' 의 이야기 스페인 내전 = 게르니카 공습 = 바스크 분리주의 라는 역사적 이슈거리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영화 내내 다양한 형태로 변조되고 반복되고 있다.       

  

            [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 ]

 

    엄마를 증오하는 아나와 부모로써의 의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올가

 

   철저하게 오디푸스/엘렉트라 컴플렉스 이론으로 오토와 아나의 성장기를

   분석하고 또한 경비행기 조종사가 되었음에도 비행기가 폭파되는 영화를 

   보는 오토를 통해 젊은 청년의 자기파괴 심리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에서 결국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가족의 해체와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나 하는 점이 아닐까. 

 

   엄마를 버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여덟살 소년의 아픔, 인위적

   으로 엮어진 남매 간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두 남녀, 상처받고 방황하는

   딸을 내버려 둔 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새 연인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주의가 우선시 되는 이 시대의 가족의 해체와 난립이 결국 ' 로미오와

   줄리엣' 과도 같은 비극을 부를 수도 있다고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핀란드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는 호수 위로 수평 이동하는 백야의 태양을 잡아낸

   아름다운 영상, ( 해가 24 시간 지지 않고 수평 이동하는 밤은 1 년에 단 한번, 하지 때만 볼 수 있다고 한다 )

 

   그 백야의 하늘을 바라보던 호숫가의 아나와 숲속의 오토, 마치 운명의 피리

   소리처럼 조용히 울려퍼지던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잊을 수 없는 음악, 

 

  남부 안달루시아의 붉은 열정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스페인 산악지대의 백색

  겨울이 보여주는 차가운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운명의 안타까움을 독특하게 표현해낸

  지적인 연출이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 < 북극의 연인들 > ...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게 무척 아쉬운 영화였다. 

    

                                     :// 2002.3.2. 알료사 (c) 장혜영//

 

 * 북극의 연인들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 /Lovers of the arctic circle

 

  1998, 스페인, 112분 / 미국판은 108 분 

  [감독 및 각본] Julio Medem

  [주연]

  Otto: Peru medem (8세) / victor hugo Oliveira (10대) / Fele Martinez (20대)

  Ana: Sara Valiente (8세) / Kristel Diaz (10대) / Najwa Nimri (20대) 

  Alvaro (오토의 아버지) : Nancho Novo 

  Olga (아나의 어머니) : Maru Valdivielso

  Ula (오토의 친 어머니) : Beate Jensen

  [음악] Alberto Iglesias

  [촬영] Gonzalo F. Berridi

 

  2000 년 메가박스 유럽 영화제 때 국내 상영 / 부산외대 어학 자료실 소장 (VHS) / 2008 년 12 월 정식 극장 개봉

 

* [용어 설명]

역앵글 reverse-angle 쇼트 : 이전의 쇼트와 정반대의 위치에서 찍은 쇼트.

( 한 장면 내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180 도 이상 바꾸는 것은 관객의 방향감각에 혼란을

  초래할 있기 때문에 특수한 의도가 없을 경우 일반적으로 금기시 된다. )

 

부감 high-angle 쇼트 : 피사체 위쪽에서 촬영하는 장면이나 각도.

어안 Fish-eye 렌즈: 영상이 극도로 왜곡되어 가장자리가 원으로 감싼 것처럼 보이는 최대치의 광각렌즈.

 

* 바스크(Basque): 스페인에서는 Vasco혹은 Vasca, 또는 Las Vascongadas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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