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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의 추억 (2001년 12월 부산일보)

alyosa 2007. 8. 22. 07:16

 브라질에서의 추억 (2001년 12월 부산일보)

 

 

 

 

(사진: 장혜영/ 살바도르 다 바이아)

 

몇 달 전 나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 곳, 남미대륙의 브라질을 다녀왔다. 경이로운 자연을 지녔다는 이 나라는 역시 그 소문대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세계 최대의 폭포인 이과수, 지구의 허파라는 거대한 아마존 밀림, 기암이 솟아오른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 흑인의 로마라는 열대의 살바도르에 이르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방인의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었다
.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자연이나 풍경들은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젠 찍어온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지 않으면 정확하게 그 풍경을 표현하기도 힘들어 졌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더더욱 희미해지고 잊혀져갈 것이다
.

그러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브라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것들이 있다. 바로 내게 작은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사람들' 에 대한 추억이다
.

리우 데 자네이루 국제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 셔틀버스를 탈 때의 일이다. 깔끔한 제복 차림에 표정이 무척 밝은 차장 아가씨가 한눈에 외국 인임에 틀림없게 보였을 나에게 다가와 행선지를 묻더니 사무실에 가서 시내 지도를 꺼내 왔다. 그리고 지도에 버스가 정차하는 곳과 나의 행선지를 표시한 뒤 버스에서 내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

버스에서 내릴 때도 그녀는 다시 한번 길 방향을 일러준 뒤 떠났고 덕분에 나는 번화한 리우의 중심가에서 지도책을 꺼내들고 표지판을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덜 수가 있었다
.

브라질 사람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친절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어서 흑인들이 많이 사는 살바도르의 해안가에서 만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바닷가 바위 틈새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한 흑인이 나를 발견하고 갑자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

먼 곳에서 빠른 말투로 떠드는 그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서 있었더니 그는 무언가에 찔려 놀라는 동작을 해 보인 뒤 아래에 있는 다른 길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그 길에는 선인장 나무가 있어 가시에 찔릴 수 있으니까 그 길 대신 아래에 있는 안전한 길로 가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

리우의 일요시장에서 날 뒤쫓아와 가방이 열려 있으니 얼른 잠그라고 말해주던 아저씨, 지하철역에 내리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출구방향을 일러주고 지나가던 사람, 노령의 나이에도 호텔에서 짐 들어주는 일을 하던 포터 할아버지가 떠나는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기원해주던 한마디 '보아 비아젬 (좋은 여행 되기를
)'......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나니 이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

아마존 강가에 수상가옥을 짓고 카누를 저어 다니던 혼혈인들과 짬만 나면 바다에 뛰어들어 열대의 뜨거운 기운을 식히던 살바도르의 흑인들, 축구와 카니발에 열광하는 리우의 도시인들과 깊은 밀림 속에서 자기들만의 고유 언어를 쓰며 최소한의 문명만을 받아들인 채 살아가는 인디오들 등 너무도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이 나라, 브라질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브라질에서 돌아오고 난 뒤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

"
거기는 잘 사는 나라요, 못 사는 나라요
? "

최첨단 미래도시 브라질리아에서부터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존하는 나라인 만큼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게다가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의 가치 기준 자체가 모호한 곳이지 않는가
.

큰 저택의 개인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일광욕하는 사람보다도 기울어져 가는 판잣집에서 나와 황금빛 바다로 뛰어든 서민들이 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라였다. 결국 난 그냥 이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

"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많은 나라였어요
. "

 



: 2001
12월 부산일보 글마당 란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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