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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열대의 크리스마스, 콜롬비아 막달레나 강 사람들과의 특별한 만남

alyosa 2010. 11. 14. 01:34

[가톨릭 다이제스트 2010년 9월호 원고 원문]

 

열대의 크리스마스, 콜롬비아 막달레나강 사람들과의 특별한 만남

                                                                       

                                                                                                                   장혜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막달레나 강 지류의 작은 섬에도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 성찬식날 빠하랄 (Pajaral) 섬 아이들

 

나는 지금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고 예전 몇 년간 과달루페회에서 세운 가톨릭 재단 대학교인 인테르콘티넨탈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온 신학생들과도 안면을 익히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 삼위일체회(the Missionary Servants of the Most Holy Trinity)의 학사님들과 부제님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이후 사제 서품을 받았고 몇몇은 성직에의 길을 포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성직의 길을 가는 것이 아메리카 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의 끝에 각자 다른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사제 서품을 받아 첫 부임을 한 신부님의 초청으로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의 막달레나 주 과말 (Guamal) 의 교구에 다녀올 기회를 잡게 되었다. ‘콜롬비아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게릴라나 마약 범죄부터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만도 않을 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고국이기도 하다. 게다가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는 시골의 현실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겨 멕시코에서 콜롬비아 카르타헤나까지 6 시간여의 비행과 다시 9시간여의 버스여행을 감수한 채 과말에 도착했다.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막달레나 강의 지류 변에 위치한 과말은 1년 내내 찌는 듯 더운 날씨에 주변으로 뻗은 초원 지대 중에선 한국의 읍내 정도에 해당하는 소도시였지만 여기는 대중 교통이 거의 없었다. 차 없는 사람들은 다른 도시로 나갈 수가 없는데 과말 주변의 초원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했다. 주말에 미사를 보러 가고 싶어도 차가 없으니 성당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역으로 신부님들이 차를 몰고 그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과말 주변에는 30개의 소성당 (Chapel, 성소) 들이 있어 3명의 신부님들이 그곳들을 돌면서 근처 주민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소성당과 소성당 사이를 휙휙 날아 다니며 거의 매 시간마다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어떤 소성당은 섬에 있어 신부님이 차를 몰고 부두에 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 섬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미사만 드린다고 다가 아니었다. 차가 그렇게 귀하다 보니 신부님의 차는 이 지역의 공용 택시나 마찬가지다. 신부님의 휴대폰은 가시는 길에 우리 좀 태워주세요하는 주민들의 전화 때문에 불이 나곤 했다 

 

 

과말 근교 리까우르떼. 주민들이 힘겹게 세운 성당 기둥들이 언젠가 얹혀질 지붕을 기다리며 우뚝 서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리까우르떼 (Ricaurte) 라는 과말 근교 작은 마을이었다. 지반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어 사람들이 사는 집이 자꾸 금이 가며 무너지고 있는 곳이었다.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18 개의 기둥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것은 새 성당을 짓기 위해 세운 기둥이라 한다. 예전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지반 문제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뒤 성당을 다시 세우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바자회를 하고 다른 동네에 행사가 있을 때 가서 막노동과 품팔이까지 해주면서 모은 돈으로 기둥까지는 세웠는데 지붕을 덮을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것이다. 벽은 아예 필요 없고 우기에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줄 지붕만이라도 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며 왜 그렇게 성당을 원하냐고 물어봤다. 성당 없다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러자 내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니 성당이 없으면 힘들고 위로 받고 싶을 때 우리는 어디 가서 기도해요? 우리도 사람인데, 하느님께 위로 받고 구원 받고 싶은 사람인데 지금은 꼭 버림받은 느낌이에요. 우리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모여서 의논할 자리조차 없어요. 애들은 어떡해요, 여기 애들 주로 다 어리지만 좀 있으면 커서 탈선, 비행에 빠질 위험도 있는데 그럴 때 성당에 모아놓고 선도도 하고 그래야 될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성당을 다시 지어 희망을 찾고 싶은 거에요. ”

 

사실 리까우르떼 같은 곳은 막달레나 주 정부나 콜롬비아 중앙 정부의 도움이나 관리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곳이다. 워낙 자연이 험난하고 큰 나라라 오지의 주민들까지 챙기지 못하는 정부만 탓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관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채 살고 있는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만나고 위로하는 유일한 존재가 성삼위일체회 신부님들이었다. 그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끝내고 떠나올 때, 진정한 성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종교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리까우르떼의 성전에 지붕이 얹혀질 그날을 기원하며. ()

 

 

지붕 없는 성전을 뒤로 한 채 하늘 아래 펼치고 있는 리까우르떼의 크리스마스 행사, 올해도 Feliz Navidad~.

 

 

[후기] 이 기사를 읽고 한 독자분이 리까우떼의 성당 지붕을 얹는 데 보탰으면 한다며 성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심어린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