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 여행기 Mis escritos

2006 아르헨티나 여행 일지 3: 마르델플라타 가는 길

alyosa 2008. 1. 14. 00:01

 

바닷가 휴양 도시 마르 델 플라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진: 장혜영

 

아르헨티나는 유럽계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는 나라다. 주민은 거의 죽었고 과거에 잉카나 아스테카 같은 별다른 문명도 없었고 넓기 만한 평원에 유럽 사람들이 들어와서 땅에 소들을 풀어 쇠고기 산업으로 한때는 유럽의 약소국들을 능가하는 개도국의 선두 국가로 콧대가 어디까지 높았던 나라였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남미의 파리처럼 꾸미고 그외 지역들도 유럽 유명 도시들의 복사판으로 만들어 한때 낭만의 아르헨티나로 여행 오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미국 같은 이민국가와는 다른 어쨌든 여기 사람들은 이민을 오면 스페인어를 쓰고 아르헨티나라는 국기 아래 단일 국가, 단일 국민화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상당수는 마음만 먹으면 유럽 국적을 취득할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카모나레시가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에 끼이자 할아버지의 나라 이탈리아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에 이번에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기도 했는데 7,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의 경제 호황이 외국 빚(외채)에 의존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나라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  우리나라 IMF 나라도 난리가 나면서 갑자기 후진국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남미 어느 나라 보다 유럽과 유사한 점이 많고, 국민중 다수가 라틴계 백인인 나라, 사회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의식 수준 어느 면에서도 유럽에 뒤지지 않아 보이던 나라가, ‘기차 타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로사리오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대서양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닷가 휴양 도시인 마르 플라타 향했다.

 

그동안 버스는 많이 보았으니 기차를 한번 타보고 싶어 역에 갔더니 뭔지 허름한 분위기의 역에서 파는 단일가의 기차표가 우리돈으로 8 5백원 정도 하는 것이다.  서울- 부산 거리쯤 되는 것 치고는  싸다 싶더니 이게 완전히우리나라 옛날 통일호 혹은 비둘기 수준인 것이다.

 

에어컨이 되는 기본이고 의자는 불편하기 짝이 없고 연발 1 시간에 연착 1 시간, 가다 서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니 그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어떤 처지의 사람들이겠는가. 이때까지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에서 봤던 피부색 하얀 아르헨티노들은 사라지고 갖가지 피부색에 기기묘묘한 복장을 사람들이 플랫폼을 채우고 온갖 짐을 이고 지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허리까지 오는 장발에 머리카락의 절반은 희게 염색을 할아버지, 그의 친구는 멕시코 기타리스트 산타나 처럼 중절모를 쓰고 머리는 일라이자 파마 같은 걸 하고

 

기차가 1 시간이나 연발을 했는데 기차가 들어오니 사람들이 앞다투어 빨리 기차에 오르려고 기를 쓰는 피난민 기차 타는 사람들 처럼 보여 혹시 자리에 번호가 없는 건가 싶어 나도 눈치 빠르게 객차 번호를 챙겨서 후다닥 거의 첫번째로 올라탔다. 그런데 자리 번호가 지정되어 있는데도 그러는 것이다. 게다가 자리가 창문쪽 자리였는데 창문으로 플랫폼의 사람들이 자꾸 들여다 본다.

 

자기 자리 찾나 했더니 가족들 환송 나온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찾는 것이다. 그러더니 무슨 전쟁 병사와 연인이 기차역서 헤어지듯 객차 창문을 사이에 두고 기차 안에 사람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밖에 사람은 몸을 내민 사람의 손을 부여잡고 거의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라고 야단이더니 1 시간이나 연발되는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가 기차가 출발하자 가는 기차를 따라 뛰어가며 가라고 손을 흔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르 플라타가 천리길도 아니고 가만 보면 그냥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 같은데 무슨 청승인지, 자기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랑, 다녀와야돼’ ‘ 엄마 그동안 지내세요이러고 있는데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오려한다. 

 

그리고 기차 안에 풍경도 갑자기 세련되던 아르헨티나가 완전히 멕시코 재래시장 뒷골목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아이스크림 장사, 양말 장사, 아이들 장난감 장사, 가만 보니 사람이 여러 품목을 들고 올라와 물건을 바꿔가며 쌉니다 외치고 있다. 게다가 포클랜드 (말비나스) 전쟁 부상자라며 한푼 줍쇼 하는 동냥자, 아르헨티나에선 흔치 않는 복제 음악 CD 장사까지

 

차창밖의 풍경도 뻔하다. 원래 철길 근처는 판잣집이 형성되어 있는 불문율 아닌가. 그런데 기차가 자꾸 서길래 불안해서 자리 사람한테 기차가 언제쯤 마르 플라타에 도착하겠냐고 물으니 하는 , ‘ 수가 없죠.’ 기차가 자주 서는 철길에서 누워 자거나 놀고 있는 사람들 쫓아내는 경우도 있고 기차에 공짜로 사람 쫓아내는 경우도 있다나

 

게다가 한번은 기차가 중간 역에 섰다가 빨리 출발을 안하길래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내다 보니 아까부터 기차 안에서 애기를 안고 왔다갔다 하던 장발에 빨간 꽃무늬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사람이 철길을 따라 뛰어가고 있고 다른 승객들은 휘파람으로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혼자였으면 떨궈놓고 기차가 떠나버렸을 텐데 애기는 차안에 있고 그러니 떨궈 놓을 수도 없고 사람 기다리느라 기차가 출발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착도 한시간 넘게, 차창밖으로 보이는 해바라기밭도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가 애인 찾아가던 길도  소도 말도 지겨워지고 김치가 되어 마르 플라타에 내려 보니 이건 몬테카를로인가, 백색의, 그림같이 예쁜 지중해풍 휴양 도시가 거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유럽 지중해 휴양 도시 풍의 마르 델 플라타, 사진: 장혜영 

 

마르 플라타 Mar del Plata’ (Plata) 바다  뜻인데 여기 은의 , 은의 바다는 예쁜 은빛 바다나 강을 연상하면 안되고 또다른 의미의 Plata, , 10원짜리 동전 빛깔의 바다나 강을 연상하면 된다. ( 남미에서는 돈을 주로 , Plata 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런 황토빛 위에 햇빛이 쏟아지면 은빛으로 빛난다는 건데 하여튼 한마디로 아르헨티나의 바다는 파타고니아의 차가운 바다를 제외하고는 물빛이 별로다. 브라질이나 카리브해의 바다와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마르 플라타 도시 자체는 그림같이 이쁘게 꾸며져 있고 여느 아르헨티나의 관광 도시가 그렇듯 서비스는 총체적으로 훌륭하다. 밤에는 아동극에서부터 성인극에 이르는 다양한 볼거리 뮤지컬이나 쑈가 준비되어 있고 호텔 서비스도 아침에 신문까지 방마다 넣어주는 일섶 형식이라 헬스클럽과 사우나도 공짜여서 나는 사우나에 가봤는데 보니까 여기 사람들은 수영복을 차려 입고 사우나에 들어가더라.

 

어쨌든 그렇게 예쁜 도시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파도치는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을 밖에.  그런데 문제가 하나, 의외로 날씨가 아직 춥다. 나는 바다에서 수영할 생각을 하고 왔는데 바닷 바람만 맞아도 덜덜 떨릴 판이니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고 일광욕을 하거나 모랫사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쩔 때는 정말 은의 바다 처럼 보이기도 하는 마르 델 플라타, 사진: 장혜영

 

 

나도 그냥 모래 사장에 앉아서 책이나 읽었는데 그래도 바닷바람 쐬니까 좋긴 좋았다. 게다가 혼자인 나도 나름대로 바빠서 오른쪽 자리 사람들 물에 들어가면 봐줘야지, 왼쪽 자리 애기가 기어오면 놀아줘야지, 뒤쪽 자리 꼬마가 장난감 흘리고 가면 줏어다 줘야지, 하여튼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휴가철 가족 단위 관광객들 틈에 끼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주로 많이 가는 관광지마다 가서 거의 틈에 끼여 같이 움직인 셈이 되었다. ( 마리에다 고추가 빨갛게 익은 화분과 손자, 손녀, 아들 할머니 이렇게 차에 타고 휴가 오는 사람들도 봤다.)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라 마르 플라타는 관광 도시 답지 않게 버스가 전자 교통 카드로만 버스비를 내게 되어 있어서 난감했는데 문제가 것이 없었다. 사람이 내주고 사람이 내주고 아니면 버스 기사가 창밖에 자기 친구 불러서는 자네 교통 카드 남았어? 그럼 아가씨 차비 긁어줘이러니까 해결이 됐는데 내가 일부러 20 원쯤 돈이 되는 동전을 주면 10 원까지 주머니 뒤져서  돌려준다.  로사리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지방 사람들은 관광객들이라고 몇십원 대충 떼먹고 이런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타러 역에 갔더니 이번엔 3 명짜리 자리 복도 쪽에 앉게 되었는데 자리에 자리 노부부의 아들이 앉아서 배웅하다가 내가 오니까 객차에서 내리더니 다시 창문에 매달려서 서로 손을 부여잡고는 엄마 잘가’ ‘그래, 사랑 건강해야해  난리가 났다.

 

이번엔 곰처럼 생긴 나이 많은 아들이 눈물까지 글썽이고 선글라스 엄마도 목이 목소리고 야단이 아니다. 남미 기준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르 플라타면 엎어지면 닿을 때라 해도 과장이 아닌데, 난리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연이 있었다.

 

하여튼 그렇게 왼쪽에서는 아들과 엄마가 눈물의 이별식 한다고 야단이고, 오른쪽 자리에는 여자가 셋과 커다란 가방과 함께 굴러 들어오듯 들어오더니 휴대폰을 꺼내 울면서 통화를 하는 것이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여자 혼자 셋과 짐을 들고 눈물 날만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애들 셋은 아역 배우를 시켜도 정도로 너무 이쁘고 검은 눈이 쏟아질 왕눈이었는데, 그중 딸이 엄마, 가방 짐칸에 올려야 되지 않겠어요?’ 한다. 여자 혼자 짐을 어떻게 짐칸에 올려내가 도와줘도 올리겠다 

 

하여튼 싸구려 여관에서 슬쩍해온 보이는 하얀 타올을 들고 눈물 땀을 닦는 여자나 애들이나 심란하게 보였는데 그때 왼쪽의 부부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세상에, 아까 같은 아들과 이별하던 할머니가 장님인 것이다.  그러니 아들이 울만도 했네, 못보는 엄마를 보내면서 비행기나 고속버스는 커녕 이런 싸구려 기차에 태워 보내려니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울었구나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얘기를 해봤는데 기차는 공영이라 장애인 할인이 많이 돼서 ( 거의 공짜일 같았다) 이걸 타는 모양이고 휴양지인 마르 플라타에 사는 아들 집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가면 딸이 마중을 나와 있어 함께 연말 새해 맞이를 거란다. 앞은 못보지만 어떻게 보면 행복한 할머니인 셈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닮은 할아버지는 괜찮은 분이라 짐이 어디 있는지 자기가 알고 내가 지하철 탄다니 어떻게 가는지 미리 설명해주고 내가 마르틴 장군역으로 간다니까 마르틴 장군이 누군지 설명해 보시오하고 재미있는 질문까지 했는데 내가 아르헨티나 독립의 영웅 아니냐하니까 그것도 그런데 그것보단 아르헨티나라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이지라고 하는데 사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으니 갑갑하겠다 싶더니 내가 옆에 있으니까 이때가 찬스가 싶은지 어디로 가시더니만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할머니 몰래 식당칸에 가서 맥주한잔 하고 오지 않았을까 싶다. 할머니가 기차 안에서 파는 음료수, 음식은 비싸다고 먹지 말라고 잔소리 깨나 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두분 내릴 내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어차피 딸이 역에 나오고 우리는 내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먼저 가라고 한다. 그렇게 뒷통수가 땡기게 노부부와 헤어지고 역에 내리니까 아까 옆에 천사같이 예쁜 아이 딸이 환하게 웃으며 어디론가 힘차게 달려가더니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 품에 안긴다. 가족이 뭔지

 

그런 면에서 대가족주의가 좋구나, 장님 할머니도 아들과 딸이 있어 비참하지 않고, ‘ 아이고 팔자야하며 우는 엄마를 달래던 어른스런 꼬마 소녀도 할머니를 만나니 저리 환하게 웃고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피난민 열차 수준이라도 열차삯 내고 여행 가거나 이동할 있는 사람들이면 어떻게든 살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정말로 모금 조각이 시급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았다. (계속)

 

 

 

내가 있을 땐 아직 한적하던 마르 델 플라타의 백사장은 그 며칠 뒤 신년 휴가철이 시작되어 이렇게 변해 버렸다고...

 

( 사진 출처: 아르헨티나 일간지 la nac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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