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4 위, 포르투갈 [2006 독일 월드컵]
(2006년 7 월 9일자로 http://latincine.netian.com 에 먼저 올렸던 글임 )
멕시코도 대통령 선거 후시비로 시끄럽고 한국도 한미 FTA, 북한 미사일 등으로 시끄러운 거 같던데 그래도 한달 간을 달군 월드컵이니 정리글을 하나 써보죠.
영화 배우 진 헤크만을 약간 닮은 명장 스콜라리 (오른쪽) 와 데쿠
2002 년 월드컵 4 위는 한국, 이번 2006 년 4위는 포르투갈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맨 끝에 있는 작은 나라, 전체 인구가 우리나라 부산시 인구보다 적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와 슬픈 파두의 멜로디를 지닌 이 나라가 최근 들어 축구로 다시 부상한 것은 2000년 유로컵 때였죠.
유럽 축구하면 수비를 위주로 한, 다소 재미없는 축구를 떠올리던데 반하여 이 포르투갈은 ' 유럽의 브라질 ' 이라는 별명답게 남미 선수들을 연상케 하는 개인기에다 수비력, 체력이 적절히 조화된 새로운 매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겁니다. 당시 유럽 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던 피구와 후이 코스타의 역할도 컸고...
그래서 잉글랜드에게 대 역전승을 거두는 등 바람을 일으켰던 포르투갈이 그 유로 2000에서 결승에 못 올라갔던 것은 바로 프랑스 때문이었습니다.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연장 후반 루즈 타임 때, 심판이 이해할 수 없는 핸들링 선언을 해 지단의 페널티킥으로 패하고 말았던 겁니다.
지단이 좋아서 환호하고 있을 동안 피구와 포르투갈 선수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심판에게 격렬히 항의했죠. 심판은 그 선수들에게 무조건 레드카드를 꺼내 응수했구요. 이후 FIFA 에서는 대대적으로 포르투갈 선수들을 징계했고 한 선수는 거의 1 년 가까이 국내 리그에서 조차 뛰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독일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심판을 사이에 놓고 패싸움을 벌이고도 대충 넘어간 거에 비하면 굉장히 심한 징계였죠. 그나마 ' 피구' 라는 그 이름값으로 가볍게 넘어간 피구가 이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약소국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당하는 것이다. 내가 유럽리그에서 뛰는 동안도 많은 차별을 받았다. 난 적어도 내 후배들은 당당하게 선수 생활을 했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있다."
클린스만과 루이스 피구, C.호나우두, 3.4 위전 이후
그렇게 눈물을 흘린 포르투갈은 2002 월드컵서도 어리버리한 팀 운영으로 16 강에 조차 오르지 못하고 짐을 싸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와서 그런지 기가 막힌 결과였죠.
그렇게 무너지나 했던 포르투갈은 그 적은 인구 어디서 그렇게 인재가 많이 나오는지, 새로운 유망주들을 이끌고 유로 2004 준우승과 더불어 2006 월드컵 4 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예전 한창 때의 피구를 연상케 하는 알밤같은 젊은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있었죠.
이번 월드컵 에서도, 포르투갈은 유럽팀인지 타 대륙팀인지 모를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잉글랜드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에 대한 잉글랜드 언론의 일방적인 비난 같은 것이었죠. (그래봤자 여기 중남미에선 전혀 화제가 되지 못했지만)
하지만 프로리그에서는 지나친 개인플레이로 욕을 먹기도 했던 이 선수가 월드컵에 나와서는 악착같은 승부욕으로 팀을 이끌다시피한 그 나이답지 않은 다부짐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콧대높기로 악명높은 잉글랜드에서 '약소국' 포르투갈의 선수로 뛰면서 예전에 피구가 가졌던 것 같은 '한' 을 갖게된 것은 아니었는지, 제가 볼 때는 호나우두의 가슴속엔 부글부글 끓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던가 싶더군요.
포르투갈 선수들은 4강에 오른 뒤, 한결같이 브라질과 꿈의 대결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하더군요. 이기든 지든 상관없다고, 최고의 경기를 해보고 싶다고 달뜬 분위기였습니다. 저 자신 두팀간의 화끈한 공격축구 대결을 기대했구요.
하지만 이게 웬일인지, 브라질이 8 강서 졸전 끝에 패해 프랑스가 포르투갈의 상대로 정해졌습니다. 프랑스는 이 글 첫머리에 썼다시피 포르투갈 입장에선 뭔가 기분이 나빠도 나쁜 악연으로 얽힌 팀...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애매모호한 페널티킥으로 선취골을 허용했고 그렇잖아도 수비가 강한 프랑스의 전원 수비를 뚫기에 포르투갈의 공격은 뭔가 모자란 면이 있었습니다.
브라질 국민들도 브라질 대신에 포르투갈이 잘해줬으면 좋겠다며, 스콜라리 감독의 포르투갈을 응원했다고 하는데 스콜라리는 히딩크와 더불어 이 시대의 양대 명장이지만 딱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건 왜 누누 고메즈를 끝까지 쓰지 않았는지?
한때 꽃미남 축구선수의 대명사로, 또 결정적일 때 한방의 대명사로 골결정력 하나 만큼은 알아주던 누누 고메즈는 결국 3, 4 위전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포르투갈의 이번 월드컵 마지막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간 벤치신세였으나 끝내 골을 넣은 다이빙 헤딩골의 대명사 누누 고메즈
어쨌든 이렇게, 유로 2006 이란 비아냥을 듣던 월드컵은 끝이 나고 있습니다. 참 마음에 안들었던 이번 월드컵이지만, 그래도 4 년전 한국한테 지고 그렇게 비참하게 떠났던 포르투갈이 이렇게 4 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부활하는 걸 보면,
사실 축구라는 게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라의 힘과 운과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4 년만에 돌아오는 기회를 잡을 수 것이니 놓치기 아까운 명작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멕시코도 이번에 오소리오 등 활약했던 선수들이 독일리그 등으로 진출했던데 이번에 눈물 흘린 선수들 열심히 해서 4 년 뒤에 다시 봤으면 싶네요. 우리나라 선수들도 물론...

페널티킥시 정확히 상대의 킥 방향을 읽어내는 걸로 유명해진 포르투갈의 히카르두 골기퍼, 유로 2004 때는 승부차기를 거의 다 막아낸 뒤 또 자신이 승부차기에 나서 골을 넣어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다

약간 멋낸 사복차림의 누누 고메스와 피구

귀국 환영식장에서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선수들, 왼쪽부터 피구, 파울레타, 호나우두
(출처: EPA 촬영자: Tiago Petinga)